247. 미움

by 청리성 김작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바라보는 시선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닦아 내기 어려운 마음』


주일에 고해성사를 봤다.

8개월 만이었다. 나는 고해성사를 볼 때, 핸드폰 메모장에 몇 월 며칠에 무슨 죄를 고백했는지 작성해둔다. 언제 무슨 죄로 고해(告解)했는지, 히스토리를 알고 싶어서 기록한다. 그래서 마지막 고해가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 고해할 때마다 지난 내용을 훑어본다. 그러면 단골 죄목이 눈에 띈다. 매번 빠지지 않고 상위를 차지하는 항목이 있다. 악습에 관한 것과 타인에 대한 미움이다.

악습에 관한 해결점은 얼마 전에 찾았다.

악습을 끊었다는 말은 아니다. 며칠 전 라디오에서 들은 한 문장으로, 악습을 어떻게 바라보고 접근해야 할지를 깨달았다는 말이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해결하려 하지 말고, 관리해야 한다.” 악습을 끊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오히려, 그러지 못하게 만들었다. 억누르다 보니 튕겨 나갔다고 해야 할까? 횟수나 시간을 줄이는 방법으로 관리하면 스트레스도 덜하고, 재미있게 악습을 관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타인에 대한 미움은 정말이지 너무 어렵다.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접근해야 할지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지만, 쉽지 않다. 미운 마음은 계획적으로 드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인지하기도 전에 머리와 마음속에, 미움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막아설 틈도 없이, 이미 들어와 있다. 그래서 매번 고해할 때마다 이 내용이 있지 않나 싶다.

고해성사를 보면, 보속(補贖)을 받는다.

지은 죄를 보상하는 마음으로 실천하는 행동이나 기도를 말한다. 이번에 받은 보속은 에페소서 4장 읽기였다. 성전(聖殿)에 들어와 ‘굿 뉴스’ 앱으로 에페소서 4장을 찾아 읽었다. 거의 마지막 구절에서, 악습에 대응하는 것처럼, 미움을 어떻게 관리(?) 해야 할지 알려주는 구절을 만났다. 아직 시행하지는 않았지만, 압박에서 조금은 벗어난 느낌이다.


미움은 대상에 따라, 크게 두 분류로 나뉜다.

가끔 미운 마음이 드는 사람과 애초에 미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다. 후자의 사람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미운 사람’이기 때문에 쉽게 이해된다. 하지만 전자의 미운 사람은 인지하지 못하는 미움이다. 그래서 더 위험할 수 있다. 좋은 관계가 한 번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이 그렇다.

평소에는 좋다가, 순간 미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마음에 거슬리는 말이나 행동을 할 때다. 가깝고 편하니까, 그런 불만의 목소리를 쉽게 내뱉는다. 그 말 한마디가 화근이 된다. 때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갈 때도 있다. ‘아차!’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미 날아간 화살이고 엎질러진 물이다. 원상복구는 사실상 어렵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가까운 사람이 가끔 미울 때, 이 구절을 떠올리면 좋겠다.

“여러분의 입에서는 어떠한 나쁜 말도 나와서는 안 됩니다. 필요할 때에 다른 이의 성장에 좋은 말을 하여, 그 말이 듣는 이들에게 은총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하십시오.” (에페 4,29)

머릿속에 나쁜 말이 떠올라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으면 된다. 머리에 떠오르는 말은 어찌할 수 없지만, 내뱉지 않는 건 어찌할 수 있다. 내가 해야 할 것은, 떠오르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뱉지 않는 것이라면 해볼 만하지 않은가?


평소에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구절은 이렇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에페 4,32)

타인에 대한 미움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온다. 용서하기 위한 노력조차 하기 싫다. 닦아내지 않는 얼룩은 잘 지워지지 않듯, 지워내지 않은 미운 마음도 그렇게 잘 지워지지 않는다. 타인에 대한 미운 마음을 최대한 내려놓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다. 나도 용서받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더 큰 용서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좌우명이라고, SNS에 올린 문장이 떠오른다. 이 생각을 명심해야겠다. “까불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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