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 선택

by 청리성 김작가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으로, 내려야 하는 판단』


‘지옥’

넷플릭스에서 개봉 하루 만에 전 세계 1위를 차지한 드라마라고 한다. 흥미가 가는 소제이기도 했고, 6부작이라는 적은 회차라 한 번에 몰아서 봤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지옥의 사자가 사람들에게 찾아와 지옥행 선고를 한다. 며칠 후 몇 시에 지옥에 간다고 말이다. 이 혼란을 틈타 ‘새진리회’라는 신흥종교가 나타나고 화살촉이라는 범죄 집단이 등장해서, 사람들을 더 혼란에 빠트린다. 이 집단들과는 달리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나는데, 이들과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살인인가 천벌인가’

포스터 상단에 표기된 문장이다. 이 두 문장이 말하는 것이, 앞서 말한 두 부류 사람들의 생각이다. 천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신흥종교 세력과 심판이라는 명분으로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집단이다. 이들이 말하는 죄는, 원죄가 아닌, 자신의 의지로 막을 수 있었던 죄를 말한다. 이 장면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누가 누구를 심판해?’


살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생각이 다르다.

죄의 심판이 아니라, 불행이라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닥쳐올 수 있는 불행 말이다. 갑자기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려 일찍 죽는 것 같은, 불행이라 생각한다. 이것을 심판이라는 이름으로 몰아가고 가족들까지 못살게 구는 것은, 엄연한 살인이라 여긴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지옥의 사자가 신생아에게 지옥행을 선고하는 모습을 보고, 이 사람들은 더욱 확신하게 된다. 이제 갓 태어난 아이가 자신의 의지로 막지 못한 죄가 무엇이란 말인가?


‘COVID-19’의 영향으로 많은 사람이 혼란 속에서 살아간다.

‘지옥’이라는 드라마가 집중 조명되는 이유도, 이 상황 때문이라 생각된다. 평온하던 가정에 공포와 슬픔이 들이닥치고, 열심히 살아가던 사람을 주저앉혀버렸다. 어떻게 사는 게 옳은 것인지 혼란스럽다고 말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열심히 살아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면,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보다, 다른 것에 눈을 돌리기 마련이다. 어차피 세상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모든 선택에는 정답이 없다.

우리가 접하는 위대한 선택이 박수를 받는 이유는, 결과가 좋기 때문이다. 그들이 선택할 때,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하지만, 확답하진 못했다. 결과는,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밀어붙였다는 사실이다.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에 따랐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문제도, 결국은 선택이다.

자신이 믿는 방향으로 선택하고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간혹, 세상이든 사람에 대한 불만으로 내 의지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싶을 때가 있다. 삐뚤어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날 때를 떠올리면, 각자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을 거다. 내 의도와 노력에 상관없이 어른들에게 혼나거나 잔소리를 들었던 일 말이다. 그럴 때 드는 생각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삐뚤어질 테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름(?) 삐뚤어진 행동을 한다.

그렇다고 마음이 편했을까? 나는 아니었다. 더 불편했다. 이도 저도 아닌 마음 상태가 아주 별로였다. 그렇다고 잘못을 인정하기는 싫었다. 이유는? 자존심 때문이라고 해두자. 마음이 불편했고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았다. 내가 나에게 가하는 또 다른 폭력일 뿐이었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진다.’

한동안 내 마음에 깊이 자리하고 있던 문장이다. 지금도 이 문장에 따라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누군가의 선택에 따라 움직이기보다, 내 의지에 따라 선택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 책임이다. 내가 책임지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선택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책임을 돌리는 것만큼, 자신에게 부끄러운 선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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