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믿지 못했을 때, 가장 크게 다가오는 느낌』
사회인 야구를 한 지 벌써 5년 차다.
좋아하는 야구라서 하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선뜻 시작할 수 없었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 때문이었다. 야구는 장비 스포츠다.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장비가 있다. 유니폼과 신발 그리고 글러브다. 헬멧과 보호장비도 있지만, 빌려서 하거나 착용하지 않아도 되니 꼭 필요한 건 아니다. 사실 나는 처음에 글러브랑 헬멧도 빌려서 했다. 배트는 팀에서 보유하고 있는 것을 사용하면 되기 때문에 굳이 살 필요는 없다. 이외에 팀에서는 공동으로, 포수가 착용하는 글러브와 장비 그리고 볼 등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장비에 애착을 갖는 사람이라면, 가방부터 개인 배트 그리고 다양한 장비를 갖춘다.
시작하는 초기 비용이 만만치 않으니, 쉽게 시작할 수 없었다.
주말에 하는 경기인데, 주말 출장이 많아 자주 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나이가 들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흔이라는 나이도 적은 건 아니었지만, 최소한 하지 못하는 후회는 하지 말자 생각하고 결단을 내렸다. 그래서 시작했는데,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공이 방망이에 맞아 나가는 손맛과 소리를 들으면 짜릿하고, 구장에 있는 그 시간이 좋았다. 순간적인 판단으로 좋은 결과를 내면, 또 다른 희열을 맛보기도 한다.
작년 말, 처음이자 마지막 게임을 뛰었다.
지금까지 게임이 없었던 건 아니고, 내가 시간이 안 돼서 참여하지 못했다. 그 게임이 처음이자 마지막 게임이 될 줄이야…. 아무튼. 오랜만에 출전이라 그런지, 수비 포지션은 우익수였고 타순은 8번이었다. 참고로 원래 나는 1~3번 타선에 내야수를 주로 했었다. 사회인 야구는 안타와 점수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타선에 자주 설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게임에서는 2회, 그것도 투 아웃에 첫 타선을 맞았다.
상대 팀이 잘하기도 했고, 우리가 운이 없기도 했다.
주자는 1루와 3루에 있었다. 초구는 몸 쪽으로 바짝 붙어 들어왔다. 1루 주자는 2루까지 달렸다. 주자는 2루와 3루. 두 번째 공은 바깥쪽으로 약간 높게 들어왔다. 배트를 냈고, 정타가 나왔다. 공은 3루수와 유격수 사이를 적절한 속도로 빠져나갔다. 두 명의 주자가 모두 들어왔고, 홈으로 송구된 공이 빠진 것을 보고, 2루까지 내달렸다. 올해 첫 게임 첫 타석에서 2타점이라. 느낌이 매우 좋았다. 하지만….
다음 타선 초구였다.
투 아웃 2루였기 때문에, 배트에 공이 맞는 소리와 함께 홈까지 달리기로 마음먹었다. ‘땅!’ 소리와 함께 공은 좌측으로 떠서 날아갔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홈까지 달렸다. 우리 더그아웃이 3루 쪽에 있어서 뭔가 지르는 소리가 들렸는데, 내용이 들리지는 않았다. 달리라는 건지 멈추라는 건지. 처음 결심한 대로 열심히 달렸다. 홈까지 1/3 정도 남았는데, 공이 포수에게 낮게 깔려오는 게 보였다. ‘아차!’ 순간적으로 판단을 해야 했다. 아웃될 가능성이 크지만 그냥 내달릴지, 아니면 3루로 되돌아갈지.
일반적으로 판단은 머리가 한다.
하지만 이럴 때는 머리가 아니라, 몸이 한다. 몸이 상황에 반응해서 알아서 움직인다. 하지만 이때는 달랐다. 머리는 그냥 달리라는 신호를 보냈고, 몸은 돌아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추측한다. 내가 돌아가려고 몸을 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가 잘못됐을까?
몸의 관성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나 보다.
몸을 돌리다 넘어졌다. 넘어지는 와중에 포수를 봤는데, 공이 포수 오른쪽으로 떨어졌다. 정확하게 잡지 못한 것이다. 나는 나름 몸부림쳤다. 기어서라도 홈을 찍으려고 했지만, 포수는 공을 얼른 들어, 내 몸에 갔다 댔다. 그렇게 아웃이 되었다. 불과 3분 사이에, 영웅이 됐다가 좋은 분위기에 찬물 끼얹은 사람이 되었다.
내 몸은 왜 내 머리를 믿지 못했을까?
타이밍으로는 어차피 죽을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일까? 홈으로 들어가면 백 프로 아웃이니, 살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되돌아가라고 했던 것일까? 몸의 판단은, 몸의 상태를 이겨내지 못했다. 그렇게 처절하게 넘어진 상태에서 몸부림을 쳤으니 말이다. 그날뿐만 아니라 며칠 동안, ‘그냥 달릴걸….’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만큼 아쉬웠다. 아웃된 것도 아쉽고, 내가 나를 믿지 못한 것도 아쉬웠다.
12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시기이다.
매년 돌아보지만, 매년 아쉬움이 크다. 크게 두 가지의 아쉬움으로 갈린다. ‘이걸 해야 했는데!’와 ‘그걸 하지 말아야 했는데!’이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하지 못한 것을 했거나 한 것을 하지 않았더라도, 아마 같은 반응으로 되돌아보지 않았을까 싶다. 사람 마음에 있는 아쉬움의 그릇은 작아서 금방 차지만, 만족의 그릇은 크기 때문에 쉽게 차지 않는다.
가장 큰 아쉬움은 어떤 아쉬움일까?
나를 믿지 못했던 아쉬움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는 이렇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에서 저렇다고 얘기한 말에 따랐던 일 말이다. 그래서 결과가 좋았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쉬움은 몇 배로 되돌아온다. 결과에 대한 아쉬움도 아쉬움이지만, 나 자신을 믿지 못했던 아쉬움이 가장 크다. 잘 잊히지 않고 계속 내 마음을 꾹꾹 찌른다. 새로운 한 해에는, 나를 믿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일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겠다. 잘 되든 안 되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