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 은혜

by 청리성 김작가
『거저 받았음을 잊지 않고, 마음에 또박또박 새겨 넣어야 할 고마운 마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망각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게도, 두 가지 상반된 특징을 가진다. 망각의 특징이라고 하기보다, 하나는 망각이 주는 혜택이라 할 수 있고 하나는 망각을 대하는 자세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합하겠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 있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망각의 혜택이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쉽게 잊는 것은 망각의 부작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충격이 오래간다.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 놓이면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범죄에 노출되었던 사람이 겪는 상황이 대표적이다. 가족의 죽음과 마음의 아픔도 정신적 충격에 한몫하기도 한다. 이런 것을 ‘내상(內傷)’이라고 한다. 육체적으로 충격을 받은 ‘외상(外傷)’도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 전쟁 피해를 든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표현하는데, 요즘은 교통사고나 기타 사고를 통해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상태를, ‘트라우마’라고 표현한다.

내상이든 외상이든 트라우마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은, 결국 정신에 강력한 충격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벗어나야 조금은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의사와 심리학자들은 트라우마에 깊이 빠져있는 사람들을 건져내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다. 여기서 망각은 사람을 살리는, 꼭 필요한 요소이다.


중요한 것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을 쉽게 잊는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은혜다.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바위에 새겨라”라는 말이 있다. 원수는 흘려보내고, 은혜는 지워지지 않게 기억하라는 의미다. 은혜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한 기억이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반대로 한다. 원수는 바위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 작은 잘못은 아주 잘 기억하려 하고, 은혜는 반딧불처럼 그때만 반짝 기억하고 만다.

나에게 잘못한 사람은 어떻게든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며, 이를 간다.

가까운 사람은 물론, 지나는 사람들에게도 그렇다. 가장 단적인 예가 ‘보복 운전’이다. 내 앞에 끼어들었다는 이유 혹은 나에게 양보해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위험하게 질주하거나 위협을 가한다. 그래서 얻을 수 있는 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양보한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나한테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도 은혜를 쉽게 잊을 때가 많다.

정말 큰 신세를 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얘기를 듣거나 조금이라도 손해라는 생각이 들면, 은혜는 오간 데 없어진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라는 마음이 이미 내 마음에 가득 차 있다. 시간이 지나고 그때를 가만히 돌아보면, 그제야 내 머리를 쥐어박고 잘못 생각한 마음을 혼낸다. 막상, 같은 상황을 맞이하면 또 잊지만 말이다. 그렇게 뺑뺑이를 돈다.

거저 받았음을 잊지 않기로 다짐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 함께 하는 사람들 등등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크게 거저 받은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매일 매 순간 마음의 돌에 새기고 돌아보면서, 잠시라도 잊히지 않도록 노력한다. 불만의 기운이 피어 오르거나 불쑥 튀어 올라오면, 가장 먼저 거저 받은 것을 떠올리도록 노력한다. 그렇게 내가 거저 받은 것을 절대 잊지 않도록 노력한다.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마음에, 또박또박 새겨 넣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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