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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성 김작가 Jan 11. 2022

254. 폭력

『상대적 힘의 우위를 가진 사람이 취하고 싶은 것에 눈이 멀면 사용하는 힘』     

잔잔하게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요동칠 때가 있다.

거슬러 올라갈 때다. 물이 흐르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치고 올라가면 잔잔하게 흐르던 물결이 요동친다. 물이 사방으로 뛰어오르고, 그에 따른 마찰음도 난다. 물의 흐름이 빠르거나 클수록, 뛰어오르는 물의 크기와 마찰음도 커진다. 결대로 흐르던 물의 처지에서는 날벼락 같은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공동체 안에서 혹은 밖에서, 이처럼 날벼락 같은 상황을 맞을 때가 있다. 누군가 폭력을 사용할 때다.     


학창 시절, 조용하던 교실에, 우당 땅땅 소음이 발생할 때가 있었다.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둘 혹은 그 이상의 친구들이 뒤엉켜서 치고받으며 싸움을 하고 있었다. 때로는 없으면 못 살 정도로 친했던 사이가 그렇게 싸움을 벌일 때도 있었다. 나중에 사건(?)의 경위를 들어보면, 사실 별거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싸움은 그렇다고 치자. 한쪽은 일방적으로 때리고, 한쪽은 일방적으로 맞을 때도 있다. 우리는 이것을 폭력이라고 말한다.      


폭력은 왜 발생할까?

상황으로 보면, 물결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갈 때처럼, 흐름을 거스를 때 발생한다. 공동의 합의라는 흐름을 거슬러서라도 취해야 할 무언가가 있다면, 폭력을 사용한다. 주체로 보면, 일방적으로 때릴 만큼, 상대적으로 힘의 우의를 가진 사람이 폭력을 사용한다. 한마디로, 상대적 힘의 우의를 가진 사람이 취하고 싶은 것에 눈이 멀면 사용하는 것을, 폭력이라 할 수 있다. 어떤 방식으로라도 취하고 싶다면, 가장 빠르고 확실한 게, 폭력일 때니 말이다.    

  

공동의 합의는 서로의 약속만 의미하진 않는다.

‘사람답게’라는 말처럼,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모습까지 포함한다. 공동체 안에서는 물론 공중 장소에서 눈살을 찌푸릴 때가 언제인가? ‘사람답게’라는 표현이 무색할 때다. 한마디로 정의하거나 나열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 사람은 알고 있다. 그 표현이 어떤 행동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항상 사람답게 살아갈 수는 없다.

나 역시 인정하는 바다. 상황에 따라, 실수라는 것을 하기 때문이다. 좋게 표현하면 인간미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너무 잦으면 밥맛 떨어진다고 말한다. 인간‘미(米)’라서 그런 표현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최소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최대한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포괄적 의미가 아닐까 싶다. 60년 넘게 살아오신 분이, 아직 어떻게 사는 게 옳게 사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하시는 걸 보면, 사람답게 사는 게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폭력은 폭력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아이라는 특성으로 볼 때, 더욱 그렇다. 절대적 힘의 우위를 가진 성인(成人)이 억압하는 힘은, 폭력이라는 표현 이외에 달리 붙일 표현이 없다. 아이뿐만 아니라, 절대적인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악한 마음을 품으면 폭력이 된다. 선택권을 가지고 상대방을 좌지우지하려는 것도 폭력이라는 말이다. 치사한 폭력.   

   

맞은 사람은 있는데 때린 사람은 없다고 한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말한다. 많은 사람이 자신은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가해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처지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피해자라고만 생각한 내가, 혹시 가해자는 아닌지. 어떤 형태로든 혹은 크든 작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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