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고 싶은 방향을 바라보고, 한 걸음을 내딛는 행동』
요즘, ‘용기’라는 단어가, 머리와 가슴에 자주 맴돈다.
사전에 보면, ‘씩씩하고 굳센 기운 또는 사물을 겁내지 아니하는 기개’라고 나와 있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일반적으로 알고 느끼고 있는, 용기는 이렇다. 삼국지에 나오는 삼 형제 중에서는, ‘장비’ 같은 인물이 용기를 상징하지 않을까 싶다. 때로는 무모하다 싶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일반적인 의미로 보면 용기는, 강한 모습이나 기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강한 용기 말고, 과감한 용기도 있다.
위험을 무릅쓰는 용기다. 철로에 떨어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열차가 달려오는데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뛰어든 용기가 그렇다.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아이를 위해, 몇 초도 안 되는 시간에 판단하고 행동한다. 이는, ‘해야지!’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익숙한 기술처럼, 생각과 행동으로 꾸준하게, 그런 모습을 해왔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체화되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호신술을 몸에 체화시키려면 한 동작을 만 번 반복해야 한다는, 옛 사범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그때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생각을 만 번 정도 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SNS에 떠도는, ‘용기’에 대한 의미는 좀 다르다.
용기가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이나 용기를 내라고 말하는 사람의 의미가, 앞서 말한, 강한 이미지나 과감한 이미지가 아니다. 방향에 대한 고민과 행동이다. 내가 가고 싶은 방향과 주변에서 강요하는 방향이 다를 때가 있다. 첫째 아이의 진로 선택이 그랬다. 아이는 문과를 가고자 했고, 선생님을 비롯한 주변에서는 이과를 가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취업이 더 잘 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많은 고민을 했지만, 아이는 문과를 선택했다.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고 응원해 주었다.
성인이 되면서, 용기를 발휘할 지점은 더 많아진다.
직업이나 직장을 선택할 때, 그리고 결혼을 선택할 때도 용기를 발휘해야 할 때가 있다.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느냐에 따라 선택의 방향은 달라진다. 그 우선순위가 주변에서 말하는 우선순위인지 자신의 우선순위인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다. 주변의 말과 자기 생각이 같으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고 많이 이야기한다. 용기를 냈던 사람은 그 사람의 방식으로,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현재 자신의 모습이 좋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지 못했던 사람은, 또 다른 방식으로 용기를 내라고 말한다.
용기를 내지 못한 결과가, 현재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만족했다면, 그런 얘기를 하진 않았을 테다. 왜 그럴까? 왜 모두가,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라고 말하는 것일까? 자신이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간 사람만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행복의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겠지만, 최소한 마음이 부대끼지 않는 상태라면 그렇다.
마음의 부대낌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매우 불편한 상태다. 감정이 동요하지 않는다. 마음에 힘이 빠지고 동시에 몸에도 힘이 빠진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의욕도 없어진다. 왜 거기에 있는지조차 혼란스럽다. 무엇이 나를 거기에 데려다 두었고, 있게 했는지조차 알 길이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부정하고 있는 거다. 먹고살기 위해 머물렀다는 것이, 수치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 따뜻한 이불 속을 벗어나는 건 매우 힘겹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아직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일어나야 하는 한계선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주문처럼 외우면서 자기를 설득한다. 조금 더 그러고 있어도 된다며, 최면을 건다. 하지만 매번 경험한다. 임박해서 일어났을 때의 모습을. 정신없이 허둥댄다. 10분만 더 일찍 일어났다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고 후회를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날은 아침은 당연하고 오후, 심하면 저녁까지 그 영향이 밀려간다. 좋지 않은 나비효과랄까?
내 인생은 어떤 나비효과가 일어나기를 바라는가?
1초만 눈 딱 감고 이불을 걷어차면 된다. 그러면 여유 있게 계획한 것들을 하나씩 해나갈 수 있다.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 떠오를 수 있고, 미처 보지 못한 것이 보일 수 있다. 결국, 방향은 정해져 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정해져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더 추워지기 전에, 이불을 걷어찰 용기를 낼 필요가 있겠다. 안 그러면 이불 속에서 영영 헤어 나오지 못하다, 그렇게 사라져갈지도 모를일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