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 동행

by 청리성 김작가
『따가운 시선을 등으로 받으며, 함께 걷고 싶은 이와 묵묵히 걸어가는 것』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이유는, 둘 중 하나다.

겉과 속이다. 아! 두 가지 모두, 마음에 드는 경우까지 하면 세 가지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분리될 수 없는지라, 겉과 속 하나만 마음에 들면 다른 하나는 그냥 묻어가게 된다. 그렇게 따지면 결론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라 하겠다. 겉이 좋든 속이 좋든 하나만 좋으면, 그 사람이 좋아지게 된다는 말이다.


겉과 속은 무엇을 의미할까?

외모와 마음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개인적인 한 사람에 대해서 말할 때는, 틀린 말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 말하려고 하는 건, 접근 방법이 좀 다르다. 겉은 ‘공적(公的)’이라고 할 수 있고, 속은 ‘사적(私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냥 친구 사이가 아니라면, 거의 공동체에 속해 있다. 회사, 학교, 동아리, 친목 모임 등등.


공동체는 그 안에서, 공적인 무언가가 이루어진다.

회사라고 하면 업무라고 할 수 있고, 학교라면 공부라 할 수 있다. 각 공동체의 목적에 맞는 개인의 역할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공동체의 의미가 없다. 그냥 여러 사람이 모여있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공항이나 기차역 혹은 식당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을, 공동체라 부르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다. 각자의 이유만 있을 뿐, 공동의 이유가 없다.


공적으로 모여있다고 해도, 개인적인 성향을 무시할 순 없다.

나와 결이 맞거나 뭘 해도 마음에 들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 그냥 미소가 지어진다. 선배 후배를 떠나,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 된다.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그리고 내가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된다는 건 매우 행복한 일이다. 공동체에서 가장 나쁜 사람은, 거짓말하게 만드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거짓말하는 사람이 일차적으로 잘못이긴 하지만, 선배든 후배든, 그렇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과는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일도 없게 된다.


무엇이 우선일까?

공적인 게 우선일까? 사적인 게 우선일까? 뭐가 우선이라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 사람에 따라 바라보고 느끼는 게 다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성향이 아주 안 맞아도, 일만 깔끔하게 처리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 업무 능력은 좀 떨어져도 사람이 좋으면 감내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자기가 무게 중심을 더 두는 쪽이 좋으면, 다른 한쪽은 무시 혹은, 안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긴 두 가지 모두를 충족시키는 사람이 흔한 건 아니니까.

마찬가지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이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이나, 저 사람에게는 매우 나쁜 사람일 수도 있다. 가끔 그럴 때 있지 않나? 내가 볼 때 아주 좋지는 않지만 나쁘지도 않은 사람이라 생각하는데, 누군가는 거품을 물고 하소연할 때 말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을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매우 좋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세상은 참 알 수 없다는 말이, 여기에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에게 듣고 싶은가?

“넌, 너무 좋은 사람이야!” 이 한마디를 누구에게 듣고 싶은가? 그 사람을 중심에 두면 된다. 다른 누가 뭐라고 해도, 그 사람을 중심에 두고 그 한마디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된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고 모두의 생각을 맞출 수는 없다. 친한 두 친구가 싸웠다면, 누구와 함께 걷든, 또 다른 친구에게 나는 그저 나쁜 친구일 뿐이다. 그 따가운 시선은 등으로 받아내면 된다. 그리고 내가 걷고 싶은 친구와 걸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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