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 역린

by 청리성 김작가
『내가 살아가는 존재 이유이며, 온전히 나로 설 수 있는 나만의 기준』

‘역린(逆鱗)’이라는 단어가 있다.

단어만 해석하면, 용의 턱 아래에 거꾸로 난 비늘을 말한다. 하지만 ‘역린’을 말할 때는 그렇게 단순하게 말하지 않는다.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면, 가만있던 용이, 천지를 흔들 정도로 분노한다는 의미까지 포함한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하나만큼은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사활을 걸고 응징해야 할 말이나 행동이다. 평소 얌전하던 사람이, 누구도 말릴 수 없이 분노하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몇 개의 영화가 떠오른다.

단어 그대로를 제목으로 쓴 <역린>이라는 영화는 며칠 전에 다시 보기도 했다. 임금의 자리에 있긴 하지만, 암살 위협에 시달리는 비참한 왕의 모습을 그렸다. 왕의 심기를 건드리는 장면이 종종 나오는데, 결국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려 폭발하게 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왕을 죽이러 들어와, 밤낮으로 왕을 지킨 신하 ‘상책’이라는 사람과의 관계다. 어릴 적 궁에 들어올 때는, ‘살수(殺手)’의 임무였지만, 언제부턴가 살리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사람의 마음을 돌리는 건, 결국 사람의 마음 곧 진정성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해바라기>라는 영화도 있다.

자기 자식을 죽이고 감옥에 간 주인공을, 아들처럼 돌본 한 엄마가 있다. 그 엄마의 지극정성으로 주인공은 출소하고, 이 엄마와 살게 된다. 엄마는 같은 실수를 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술을 마시지 말고 싸우지 말라고 말한다. 주인공은 철저하게 지킨다.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불량배의 구타를 그대로 받는다. 어떤 상황이 와도 절대 주먹을 휘두르지 않는다. 엄마는 식당을 하고 있었는데, 재개발한다고 가계를 비우라는 압력이 들어왔다. 엄마가 끝까지 버티자, 관계자가 몰래 찾아와 엄마를 죽인다. 이 사건은 주인공의 역린을 건드리게 되었고, 말 그대로 영화 같은 액션 장면으로 모두를 응징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역린을 가지고 있다.

다른 건 다 참아도 이것만큼은 절대로 참을 수 없는 그것이 바로, 역린이다. 그러고 보면 역린은 어떤 사람을 분노하게 만드는 부분이지만, 그 부분은 결국 그 사람이 반드시 지키고 싶은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것은 다 내주어도 절대 내줄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아픔의 관점에서 보면 아픈 손가락일 수 있지만, 자신의 존재 이유로 본다면 나를 살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나를 살게 하는 건 무엇일까? 내 모든 걸 걸고도 지키고 싶은 건 무엇일까? 그렇게 내가 꼭 붙들고 싶은 건 무엇일까? 왜 그것을 붙들고 싶은 것일까? 그것이 없는 나를 상상하면 어떤 마음이 들까? 그것을 붙들고 지키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은 무엇일까? 이유부터 할 수 있는 것까지 질문해 보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자신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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