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 조건

by 청리성 김작가
『내가 가둬놓으려고 의도하지만, 내가 갇히게 되는 마음의 자물쇠』


‘조건부’

어떤 일이나 행동에 제한을 붙이거나 걸 때, 그 앞에 붙이는 표현이다. 주변에서 흔하게 들리는 ‘조건부’는, 학교 시험 시즌 때 나온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말이다. 특정 과목에서 백 점을 맞으면 게임기를 사주겠다고 부모가 제안한다. 몇 번의 경험이 있는 아이는 자신이 먼저 제안을 한다. 평균 몇 점 이상이면 자신이 원하는, 쉽게 살 수 없는 것을 제안한다. 부모는 흔쾌히 허락한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을 내겠다는데 마다할 부모는 거의 없지 않을까? 내가 알기로도 주변에 거의 모든 부모가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여기서 ‘거의’에 해당하지 않는 부모가 있으니, 그게 바로 나다.


나는 이런 제안을 매우 싫어한다.

아이들도 이런 내 생각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 생각에 동의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말을 꺼낸 적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학생으로 해야 할 당연한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회사에서도 기본적인 월급을 받지만 좋은 성과를 내면 성과급을 받거나 진급이 되지 않냐고. 그런 맥락에서 보면 노력한 결과에 대한 보상은 주어져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이다. 맞다.


열심히 노력한 성과에 대한 보상은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러니까.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성과가 나왔는데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지 않으면 기운이 빠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내가 해야 할 것을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가 나왔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다는 건 매우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는 목적 자체가, 보상이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말이다.


처음 한두 번은 좋은 동기부여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기본이 된다. 악의적인 마음을 가져서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라 그렇다. 감사한 보상이 아니라,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로 생각하게 된다. 그런 인식이 자리 잡히면, 받았을 때는 당연한 거고 받지 못하면 손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는가?

더 큰 보상이 아니면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약을 자주 먹으면 내성이 생기는 것처럼, 보상도 내성이 생기게 된다. 한도 없는 보상을 지속해서 할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보상이 과연 그 사람의 마음 성장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보상이 따르지 않는 일은 내가 해야 할 역할이라 생각하지 않고, 마치 선심 쓰듯 해주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도 그렇다.

당연히 열심히 해야 할 공부가 아니라, 부모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해주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우리 아이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가? 아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거로 생각한다. 잘 했다고 응원해 준 것뿐인데 그게 이렇게까지 될 일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한번 잘 살펴보라. 정말 그런지.


조건부를 거는 사람치고, 진심인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네가 이렇게 하면 내가 이렇게 해주겠다고 말하는 사람 말이다. 상대방이 하는 것을 보고 그에 따른 무언가를 해주겠다는 말은, 어찌 보면 매우 교만한 표현이다. 심판자처럼 군림하겠다는 생각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내가 더 가진 것 같고 내가 결정권을 쥔 것 같고 내 마음대로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자신이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을 과연 지배하고 있을까? 겉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자신의 말에 따르고 복종하니까.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한 가지 예만 봐도 그렇다.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간다. 공을 던져서 물어오라고 하면 잽싸게 달려가 물어온다. 말을 잘 들으면 사료를 준다고 하면서 훈련을 시키고 복종시킨다. 그렇게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다룬다. 때로는 기분이 나쁘면 강아지에게 화풀이하기도 한다. 소리를 지르거나 위협을 가한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강아지는 이유도 모른 채 쭈그리고 앉아 주인의 눈치만 본다.


그러던 어느 날.

강아지가 사라진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보이지 않는다. 사방을 찾아 헤매도 찾을 수 없다. 전단을 돌리고 수소문했지만, 소용이 없다. 이 사람은 온전한 생활을 할 수 없다. 자꾸 생각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를 던져본다. 이 사람은 과연 강아지의 진정한 주인이라 할 수 있는가? 자신이 마음대로 다뤘던 강아지가 없어지자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이 사람이 과연, 강아지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강아지가 이 사람의 진정한 주인이라 생각한다. 이 사람은 강아지를 길들였다고 생각하지만, 이 사람이 강아지에 길들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 이유는, 진정한 주인으로 살기 위함이다.

조건부를 거는 순간, 내가 상대를 길들인다고 착각하게 된다. 내가, 그 사람과 조건에 길드는데도 말이다. 강력하게 부정하겠지만 그렇게 된다. 강아지를 길들였다고 생각하는 주인처럼 말이다. 내가 움켜쥐려고 하는 주도권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행동도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자유로운 삶을 꿈꾸면서 그러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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