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가림막

골라서 가릴 수 없다.

by 청리성 김작가
눈과 비(위기)를 막아주지만, 햇빛(기회)도 막는다.


오래전, 예전 회사에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하게 됐었다.

몇 안 되는 인원이라, 업무를 아는 사람도 없었고 시스템이나 정보도 없었다.

내가 그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 정말 막막했다.

영화에서, 정신을 잃었던 주인공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래바람이 부는 벌판에 혼자 남겨진 장면처럼 내 마음이 그랬다.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뭐라도 해야 했다.

유아체육을 할 때, 운동회 등 행사 준비했던 프로세스를 떠올리며, 진행을 시작했다.

해야 할 것 같은 일을 나열했고, 나열한 일들을 묶을 수 있는 것끼리 묶었다.

묶고 난 일들 위에 대표할 수 있는 이름을 붙였다.

대분류로 구분을 한 것이다.


대분류로 나뉜 내용을 바탕으로,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체크리스트에는 물건이라면 필요한 수량을 적었고, 업무라면 해야 할 일정을 표시했다.

내가 해야 할 것과 협력업체에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을 구분했고, 거래처에 확인을 받아야 할 것도 정리했다.

최종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기한을 정했다.

내가 밤을 새워서 할 수 있는 업무가 있지만, 밤을 새운다고, 내 의지로 맞출 수 없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거래처 입장에서 희한한 업체라고 생각할 말과 행동을 참 많이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부끄럽고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때는 용감했다. 몰랐으니까.

그렇게 부딪히고 넘어지면서 업무를 습득했다.

몸과 머리 그리고 마음으로 부딪히면서 익힌 업무 역량과 배움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을 15년 이상, 지금도, 하는 이유도 그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배울 것이 많아도, 필요 없는 일과 안 할 수 있으면 안 해도 되는 일들이 있다.

그래서 경력자가 필요한 것이다.

시행착오는 한두 번 겪는 것이지, 매번 겪는 것은 시행착오가 아니라 문제기 때문이다.

필요 없는 일과 안 할 수 있으면 안 해도 되는 업무를 없애도록, 시스템을 구성했다.

후배들이 겪지 않아도 될 시행착오는 겪고 싶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내가 별로 안 좋았으니까.


체크리스트 양식을 만들었다.

각각의 업무를 할 때 확인해야 할 사항과 준비물 등에 대해 세세하게 문서로 만들었다.

그렇게 갖추고 나니, 후배들은 시스템에 따라, 업무를 수월하게 배울 수가 있었다.

더 빨리 성장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업무시간도 많이 단축되었다.

경쟁업체는 갖추지 못한 시스템을 갖췄다는 것이 뿌듯했다.

이 시스템은, 업무 프로세스 이외에, 자신의 업무 노하우를 내어놓아야 가능하다.

자신의 노하우를 밥그릇 지키기로 사수하고 있으면, 절대 시스템을 만들 수 없다.

그래서 경쟁업체는, 지금도 이런 시스템을 갖춘 곳이 거의 없다.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장점이 있으면 그 속에는 반드시 단점이 존재하는 법.

쉽게 익힐 수 있다는 것과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시스템으로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이 존재했다.

시행착오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대목이다.

부딪히고 넘어지는 것을 최소화하다 보니, 그런 상황에, 쉽게 힘들어하고 어려워했다.

시스템대로 움직였기 때문에, 조금만 낯선 상황을 만나면, 이겨낼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이다.

처음부터 해본 사람은 없는데, 안 해봤다는 이유로 지레 겁을 먹는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해보려고 하기보다, 자신은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됐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독하다 싶을 정도로 부하직원을 혹사하는 상사가 나온다.

그렇게 맷집을 키워 놨기 때문에 어지간한 일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인격적인 존중이 뒷받침된다면, 성장을 위해서, 그 방법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외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 비나 눈이 오면, 그것을 막기 위해 가림막을 내린다.

비나 눈이 멈추고, 언제 그랬냐는 듯, 햇볕이 비추면 그 햇볕을 쐬고 싶어 진다.

그때 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가림막을 거두거나, 의자를 옮겨 가림막이 가리지 않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가림막은 비나 눈을 막아주기도 하지만, 햇볕도 가린다.

가림막에 몸을 맡기는 것도 필요하지만, 항상 가림막 아래 있다면 성장이 매우 더딜 것이다.

누군가 갑자기 가림막을 걷어냈을 때,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가림막이 있더라도, 가끔은 비와 눈도 맞아보고 햇볕도 쐐가면서 그렇게 살아보면 어떨까?

가림막이 언제나 영원히 나를 가려주지도 않고, 막는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니까.


p.s 댓글로 당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적어주세요. 좋은 나눔의 장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이전 05화5. 기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