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먹기에 따라,
희망의 씨앗을 뿌릴 수도 절망의 불씨를 날릴 수도 있는 지점』
산불로 큰 피해가 일어나고 있다.
지금까지 들었던 규모 중에 가장 크지 않나 생각된다. 금주 초에 라디오에서 들은 면적 규모는, 축구장 10,000개 정도의 크기라고 들었다. 잘 못 들었나 싶을 정도로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감이 잡히지 않을 만큼 말이다. 산불로 타들어 간 숲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다. 이분들의 속이야 말고 정말 타들어 가고 있을 테다. 앞으로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는, 깊은 한숨을 더할지도 모른다. 부디 원만하게 해결되고,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셨으면 하는 마음을 더 한다.
어제 라디오에서 산불 소식을 다시 들었다.
관계자 한 분이 나와서 인터뷰를 했다. ‘한국산불방지기술협회’로 보인다. ‘산불방지’라는 말은 기억나는데, 앞뒤에 다른 단어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아 검색해 봤다. 그 협회 관계자가 나오셔서, 지금 현황과 전망에 관해서 설명했다. 안타까운 사실은, 비가 오지 않는 이상 진화 기간은 더 길어질 것이라는 말이었다. 비 소식을 들으면 이래저래 귀찮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이 말을 들으니 마음이 달라졌다. 귀찮아도 좋으니 제발 비만 좀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유는 이랬다.
아무리 진화를 했다고 해도, 낙엽 사이에 감춰진 작은 불씨가 바람으로 날아간다고 한다. 밤사이 그 작은 불씨가 또 다른 불을 일으키는 거다. 그렇게 점점 그 범위가 넓어지니,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러니 밤새 내리는 비가 그 기운을 집어삼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씨는 아주 작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영향력은 참 어마하다. 그러고 보면 작은 불씨가 큰불로 번지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작은 불씨가 날아가는 것처럼, 누군가의 작은 말이 마음에 내려앉는다. ‘이거 뭐야?’라며 밟아 끄면 되는데, 자꾸 그 말을 곱씹게 된다. ‘생각할수록 괘씸하네!’ 불씨는 마음 낙엽에 옮겨붙는다. 흩날리는 낙엽처럼, 마음 낙엽도 가볍고 약하다. 그리고 작은 바람에도 잘 흔들린다. 마음 낙엽에 옮겨붙은 불씨는 금세 불기운을 일으킨다. 생각할수록 괘씸한 마음의 불씨는,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의 불길로 번져서 때로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바람에 날려 옮겨붙는 것처럼, 그 불씨와 별 상관없는 사람의 마음에도 옮기게 된다. 기분 나쁜 마음에서 좋은 말과 행동이 나올 리가 없다. 그때 재수 없게(?), 거슬리는 말이나 행동이 포착되면, 평소에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 대수로운 일로 변한다. 영화 <베테랑>의 명대사가 그 상황을 잘 설명해 준다. “문제로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문제로 삼으면 문제가 된다.”
이런 마음이 나쁜 건, 약자에게만 그렇다는 사실이다.
강자한테는 이렇게 못한다. 하고 싶어도 참는다. 내가 손해를 입을 게 뻔하니까. 본전도 못 건진다는 말도 있듯이, 어차피 안되는 싸움이라 생각하고 포기한다. 하지만 만만한 사람에게는 그렇게 한다. 오히려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못된 사람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지배하면 좋을까? 당장은 화풀이해서 좋겠지만, 과연 그게 좋은 걸까?
아니다.
타인의 마음에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지는 못할망정, 절망의 불씨를 날리는 건 좋지 않다. 불은 잘 번진다. 그 약자는 또 다른 약자에게 그 불씨를 날릴 가능성이 크다. 보상심리라는 말로 정당화하면서 날린다. 이 심리가 작동하면 절망의 불씨를 날리게 되고, 나는 악순환의 연결고리가 된다. 자기 선에서 끊겠다는 선한 마음을 가지면 멈출 수 있다. 내가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선순환의 연결고리가 되는 거다. 어떤 연결고리의 중심에 서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