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내가 먼저 노력하는 마음』
‘발단(發端)’
어떤 결과가 나왔을 때 그 원인을 쫓아간다. 쫓아가다 제일 나중에 이르는, 그 일이 처음 시작된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그 지점을 ‘발단’이라고 한다. ‘결과론적으로 말하면’이라고 운을 떼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거의 가, 발단을 쫓아가는 과정을 설명한다. 그 이유가 타당하다고 생각될 때도 있지만, 퍼즐을 맞추듯, 끼워 맞추는 경향도 없지 않아 보인다. 전문가라는 타이틀만 달았을 뿐, 관련 내용을 조금만 파악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할 때 그런 생각이 든다.
발단을 찾는 건, 다양한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좋은 상황이라면 두루뭉술하게 찾기도 하고, 아예 그 이유를 묻거나 따지지 않을 때도 있다. 결과가 좋으면, 그 과정은 아름답게 미화되기도 하고 무용담처럼 포장되기도 한다. 씁쓸하지만 이게 현실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결과가 좋더라도 그 시작이나 과정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반드시 확인하고 논의해서 바로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힘들게 쌓아온 모든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가장 위험한 건 눈에 띄는 문제가 아니라, 보이지 않고 인지하지 못한 문제다. 문제가 보이지 않을 뿐인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발단은 수동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벌어졌다고 표현하거나 일어났다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능동적으로 사용될 때가 있다. 사람 관계에서다. 개인 사이의 관계는 물론, 개인과 조직은 관계도 그렇다. ‘누가 먼저’를 두고 치열하게 논쟁을 벌인다. 개인 사이의 관계가 벌어졌을 때, 그 이유를 서로의 탓으로 돌린다. 당신이 이랬기 때문에 자신은 저럴 수밖에 없었다고, 그 이유의 타당성을 설명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은 또다시 같은 논조로 반박을 한다. 도돌이표처럼 계속 뱅글뱅글 돌다가 결론을 맺지 못할 때도 있다.
결론을 맺는 방법은 하나다.
누구 하나가, 자신의 탓이라 인정하는 것이다. “오케이! 그 부분은 내가 잘못했어!”라고 인정하면 모든 것이 한순간에 정리된다. 이 말이 나오길 바랐던 상대방은, 막상 말을 들으니 멀쑥해진다. “아니야, 생각해 보니 내 잘못도 컸네!” 이제는 서로가 자기가 잘못이 크다며, 전혀 다른 분위기가 연출된다. 진작 그렇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빠르게 마무리했으면 좋았을 것을, 왜 그렇게 끌었는지.
요구할 때도 그렇다.
무언가를 요구할 때, “네가 먼저 이렇게 해주면 나도 그렇게 할게!”라고 말할 때가 많다. 상대방에게 먼저 요구하는 거다. 내가 원하는 요구에 맞추면 나도 상대방의 요구에 맞추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자신의 요구를 먼저 들어 달라고 요청한다. 협상할 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가장 큰 이유이다. 누구 하나가 받아들일 때까지 팽팽한 줄다리기는 멈춰지지 않는다. 그럼 누가 받아들여야 할까?
타인은 내가 어찌할 수 없다.
그래서 협상이 원활하지 않은 거다.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건 바로 자신이다. 내가 먼저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없다. 받아들일 때까지는 마음이 갑갑할 때도 있고, 심장이 심하게 요동칠 때도 있다. 하지만 받아들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과 심장이 고요해진다. 한 치의 여유가 없던 마음에 여유가 찾아오고, 호흡도 안정을 찾는다. 때로는 관대하게 마음을 먹은 내가 주도권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주었는데 오히려 더 많이 얻은 느낌말이다.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사순 시기가 시작되고, 이마에 재바르는 예식을 할 때 들은 말씀이다. 오랫동안 들었던 말씀인데, 이번에는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왜일까? 사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이 말씀을 되뇌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거다. 욕심낼 이유도 조급할 이유도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차피 흙으로 돌아갈 몸이라 생각하면 아무것도 움켜쥘 것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냥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