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다고 가볍게 여기게 하는 마음으로, 절대 가져서는 안 되는 마음』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이 가설을 증명하는 건 어렵지 않다. 있을 땐 느끼지 못하지만, 없으면 느끼게 되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공기나 물은 물론이고, 매일 사용하고 있거나 자주 접하는 것을 떠올리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사라진다. 당연하다는 생각은 그 깊이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깊이가 깊으면, 있을 때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귀찮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사람이 그렇다.
옆에 있으니 당연히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당연하다는 생각이 교만의 그릇에 담기면, 어이없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자기 의지에 따라 언제든 옆에 둘 수도 내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쓸모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고, 자만한다는 말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속담처럼, 필요에 따라 마음이 달라진다.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으면 당연한 마음이 들고, 당연한 마음은 상대방을 가볍게 여겨, 쉬이 날려버린다.
과연, 옳은 선택일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자기 의지에 따라 선택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쉬워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크든 작든 필요성이 느껴진다. 사람은 어떠한 형태로나 어떠한 이유로든, 반드시 그곳에 있는 이유가 있다. 당연하다는 마음이 그 이유를 가리기 때문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필요에 따라 가벼이 여겨 날려버리고 아쉬워하는 마음은, 매년 돌아오는 계절처럼 무한 반복된다.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자주 망각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떠올려보자.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가까이 있기에 소중함을 몰랐다는 노래의 가사처럼, 가까이 있으면 소중함을 잊게 된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가끔 떠올려야 한다. ‘만약, 이 사람이 내 옆에 없다면?’ 어떨까? 실제 이렇게 된다면 어떨까?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지거나 먹먹해질 수도 있다. 어쩌면 실제 그렇게 될까 봐 마음이 불안해질 수도 있다. 그만큼 당연하지 않다는 말이다.
조잘조잘 떠드는 아이가 있다.
너무 귀찮고 시끄러워서 조용히 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날, 마침 그 바람이 이루어졌다. 아이가 아파 누웠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 이제 조용하니 살 것 같다!”라고 말할까? 아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귀찮고 시끄러워도 좋으니, 제발 좀 일어나서 떠들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할 거다. 전에는 조잘조잘 떠들어대는 아이의 건강을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아파서 누워있는 아이를 보고,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당연한 사람은 더욱이 없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이미 내 삶에 깊이 자리 잡은 사람이다. 그 사람이 내 곁을 떠나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게 좋다. 그래야 혹시 내 곁을 떠나더라도 아쉬움이나 후회가 덜하게 될 테니 말이다. 지금까지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