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나에게 필요한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망』
기도할 때, 가장 의문이 드는 건 시점이다.
간절히 기도하면 다 이루어진다는데, 과연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 내가 원하는 시기에 이루어지면 좋겠는데, 꼭 그렇게 되진 않는다. 조금 이른 시기에 이루어지기도 하고 때론 조금 늦은 시기에 이루어지기도 한다. 어떤 때는 이루어졌는지도 모른 채 지나갈 때도 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아차리는 거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내가 원하는 방식 혹은 형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내가 원하는 것과 정반대로 이뤄질 때도 있다. ‘뭐지?’ 원망하는 마음으로 한탄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아! 그래서?’
언제 그럴까?
내가 원했던 것이, 좋은 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다. 내가 간절히 원했는데, 그게 나에게 약이 아닌, 독이였던 거다. 한 예로 이런 일이 있었다. 프로젝트를 따기 위해 열심히 준비해서 경쟁 PT까지 잘 마쳤다. 분위기도 좋아서 당연히 될 줄 알았는데, 되지 않았다. 너무 화가 났었다. 분명 무슨 음모(?)가 있을 거라는 생각까지도 했다. 시험공부도 그렇지 않은가? 자기가 시간을 많이 들이고 열심히 한 과목일수록, 성적이 좋지 않으면 허탈해지는 것과 같은 기분 말이다. 정성을 들이고 가능성이 컸던 만큼 허탈감도 컸다.
하지만
나중에 알았다. 그 프로젝트가 생각보다 만만찮은 프로젝트였다는 걸 말이다. 쉽게 말하면, 5명이 10시간이면 할 수 있다고 예상했는데, 10명이 15시간이 걸렸다는 소문을 들었다. 예상보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지만, 추가 비용은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시간적 금전적 손해라는 말이다. 심지어 프로젝트가 시행되기 며칠 전에 프로젝트 진행이 취소까지 되었다. 일부의 금액은 보존을 받았지만, 결코 보존될 수 없었다. 기회비용까지 치면, 실로 큰 손해가 예상됐다. 사실 그 소식을 듣고, 진행했던 업체가 짠하게 느껴졌다. 원망스러웠던 그 업체가 말이다.
사실 이보다 더 큰일도 여럿 있었다.
내가 바라고 원했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일 말이다. ‘도대체 왜?’라는 의구심으로 마음이 너무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왜 그런지를 깨닫게 되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가 원하는 상황이 아닌 방향으로 흘러가면, ‘무슨 뜻이 있으시겠지?’라고 마음을 내려놓는다. 애써 힘줘서 내가 어찌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마음 부대낌으로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벌어지는 상황에서 의미를 찾고 그 의미가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발견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 그래서?”
어느 시점이 되면 그 메시지를 깨닫는다. 빠르면 하루 이틀 만에 메시지를 찾기도 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생을 마감할 때면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메시지를, 그때는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기도는 일생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는가 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다 옳고 좋은 것은 아니다. 이것만 명심하면 된다. 그러면 지금보다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이라는 말과는 다르다. 숨겨진 메시지를 찾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은, 나에게 온 메시지는 무엇인지 찾아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