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와 가슴으로 이렇게 받아들이면,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는 상태』
NJA 2단계 두 번째 강의가 진행된 날은 어린이 날이었다.
휴일이었지만, 어김없이 새벽 6시에 시작되었다. 평소에는 출근해서 들었는데, 집에서 편안하게 들으니 나름 새로웠다. 항상 강조하는 ‘지정의(知情意) 학습’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그 접근 방법은 달랐다. 1단계에서는 기본적인 내용이었다면 2단계는 보다 확장되고 구체적이라고 해야 할까? ‘활동’이라는 키워드에 초점을 맞추면서, ‘체헐리즘’의 대명사로 불리는, 남형도 기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체헐리즘’은 체험과 저널리즘의 합성어다. 사실 나는, 이 용어도 이 기자분의 이름도 처음 들었다.
방송으로 방영된 영상을 봤다.
기자로, 기사를 쓰는 방식이 남달랐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내용을 이해한 것만으로 쓰지 않았다. 직접 체험하고 깨달은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물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영상을 통해 그 내용을 보는데, 용기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진정으로 타인을 위하는, 자비의 마음을 가진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인칭 시점에서 바라만 보고 쓰는 게 아니라, 1인칭 시점으로 바라보고 체험한 기사는 어떠하겠는가? 교수님은 이분이 진정한 ‘뉴 저널리스트’의 표본이라고 말씀하셨다. ‘뉴 저널리스트’라는 개념을, 더욱 명확하게 정립했다. 그리고 또 하나. ‘지정의’의 완성이 무엇인지도 명확하게 정립했다. 나는 이것을, 온전히 받아들였다는 것의 증거로 해석했다.
온전히 받아들였다는 증거는, 실천이다.
생각하고 말하고 느끼는 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그것은 온전히 받아들였다고 볼 수 없다. ‘지’와 ‘정’의 마침표는 ‘의’다. ‘의’는, ‘지’와 ‘정’으로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으면 발휘되기 어려울뿐더러, 설사 발휘되더라도 지속하기 어렵다. 생각하고 느낀 것이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지’와 ‘정’이 온전히 받아들여졌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의’를 행하지 않는 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많은 사람이 실천하지 않는 문제의 원인을 의지로 돌렸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실패한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핑계를 의지로 돌리면 되기 때문이다. 의지가 약해서 그렇다는데 더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하지만 정말 문제는 제대로 깨닫지 못한 거고 제대로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실천이 되지 않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코칭도 그렇다.
얼마 전에 KAC 인증 자격을 취득했는데, 코칭을 하면서 느꼈던 것이 이와 연결된다. 타인에 떨어져 있는 에너지를 끌어올려 스스로 답을 찾게 해주는 게 코칭의 정의다. 여기서 떨어져 있는 에너지를 이렇게 바라볼 수 있다.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발견하지 못했거나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왜 해결해야 하는지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니, 에너지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떨어진 에너지로는 의지가 발휘되기 어렵다. 코칭을 하면 사람들이 “아!”라는 작은 탄식과 함께, 자신의 문제를 명확하게 인지하거나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달을 때가 있다. 이때가 바로 ‘의’를 실천하기 위한 ‘지’와 ‘정’의 완성이라 생각된다. 이제 왜 해야 하는지 알았으니, 실천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에너지를 끌어올리기 충분하다.
‘지’와 ‘정’은, ‘의’와 상관관계가 아닌, 인과관계로 봐야 한다.
상관이 있는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지’와 ‘정’이 온전히 이루어져야 ‘의’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의’를 통해 다시 ‘지’와 ‘정’을 확립하게 된다.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거다. 서로서로 인과관계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다. 작은 눈덩이가 굴러서 점점 커다랗고 단단한 눈덩이가 되듯, ‘지정의’도 그렇게 작게 시작되지만 커다란 덩어리가 되어, 자신을 대변하는 될 날이 온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