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 구속

by 청리성 김작가
『스스로 하는 것은 속박이 아닌, 그로 인해 자유롭게 살게 하는 것』

“나를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한치의 망설임 없이, 명쾌하게 답을 할 수 있는가? 아니, 답이 아니더라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한 번이라도 이런 생각을 해봤다면, 어렴풋이라도, 나를 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떠올랐던 적이 있을 테다. 내가 현재 숨 쉴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그 무엇이 바로, 나를 살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어떤 행동이나 습관일 수도 있다. 지속성에 따라, 일시적인 것일 수도 오래된 것일 수도 있다.

“지금, 나를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나를 살게 하는 것은 사람인가? 행동이나 습관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일시적인가? 오랜 시간 지속한 것인가? 이 질문에 하나씩 답을 해보면, 지금 나를 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수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단순하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는, 이 질문에 한치의 망설임 없이 명쾌하게 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아니었다. 한 가지 요소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일시적이거나 지속한 것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잘 어우러졌기 때문에, 내가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순간에 만난 사람들이 떠오른다.

거의 가 지금은 연락하지 않거나, 아예 끊긴 사람들이다. 오랜 시간 만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그때는 없으면 안 될 정도로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였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릴레이에서 바통 터치를 하듯, 내 상황이나 역할에 따라 사람들이 바뀌었다. 행동이나 습관도 그렇다.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것을 익히기 위해 배우고 반복했다.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했는데, 잘 된 것도 있고 안 된 것도 있다. 어쩌면 습관이 된 행동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그 행동이 나를 살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생각이 언어를 지배한다고 하는데, 언어가 생각을 지배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나를 지배하는 행동이 있는가?

내가 익히기 위해 노력한 행동이 나를 지배하는 상황 말이다. 증상(?)은 이렇다. 처음에는 하고 싶어서 했는데 어느 순간 해야 할 것 같고, 지금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행동이다. 나는,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그렇다. 처음에는 쓰고 싶어서 시작했다. 신부님들이 쓰시는 복음 묵상 글을 평신도 처지에서 써보자는 심산(心算)이었다. 어느 순간이 되자, 많지는 않지만, 이 글을 기다리는 분들을 만났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너무 감사했다. 그래서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가 읽든 읽지 않든,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쓰고 있다. 이 글이 1,255번째 그러니까, 1,255일째 쓰는 글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필요한(?) 절차가 있다.

새벽 시간 눈을 뜨면, 제대 앞에 앉는다. 1인용 장궤틀을 이용해 무릎을 꿇고 앉는다. 자유 기도를 잠시 하고, 매일 미사 책을 읽고 묵주기도 5단을 바친다. 매일 미사 책은, 그날의 모든 내용을 읽는다. 가장 집중해서 읽는 부분은 복음이다. 복음을 읽고 그중에 가장 와닿은 문구를 선정한다. 그리고 그 문구를 묵상하고 이처럼 글로 옮겨 적는다. 아! 하루도 빠짐없이 이렇게 해온 건 아니다. 매일 하려고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약식으로 진행할 때도 있다. 중요한 건 빠짐없이 했다는 사실이다.

이 글을 쓰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 글을 쓰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 나를 지금까지 있게 했고, 나를 지배하는 행동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나를 살아가게 하는 행동 혹은 나를 살아가게 하는 그 무엇이 있는가? 내가 방향을 잃을 때, 나를 다시 중심으로 끌고 오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그 무엇이 있느냐는 말이다. 반드시 있어야 한다. 때로는 발목을 잡히는 것처럼 싫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살아가는 힘을 얻기 때문이다. 영원한 생명의 빵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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