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 질문

by 청리성 김작가
『현재의 위치와 원하는 위치의 간격을 알 수 있는 한마디』


“나는 누구인가?”

뜬금없는 질문 같기도 하고, 낯간지러운 질문 같기도 하다. 이 질문에 답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사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책을 읽을 때, 이와 비슷한 질문이 언급되면 그때 잠깐 생각했을 정도? 더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래 저널’을 쓰기 시작하면서는 매일, 이 질문과 마주한다. ‘미래 저널’을 쓰면서 답해야 하는, 두 번째 질문이기 때문이다. 신기한 건, 매일 마주하는 이 질문에 답하는 내용이 매일 다르다는 거다. 다른 내용을 쓰겠다고 의도한 건 아니다. 그 질문이 눈에 들어오면 연필로 그에 대한 답을 써 내려가는 데, 다른 내용이 적힌다. 맞다. 내가 쓴다기보다 적힌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아침에 적히는 나에 대한 설명이, 곧 나를 대변한다.

앞으로 넘기면서 적힌 내용을 살펴보면 그렇다. 아쉬움이 짙게 묻어있기도 하고, 잘했다고 생각한 부분이 춤추듯 적혀있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적혀있는 이 부분을 모아서 쭉 읽어봐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런 사람인가?’라며 낯선 느낌이 들기도 할 테고, ‘그래, 그렇지!’라며 공통으로 자주 언급된 내용에 대해서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할 테니 말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계속 답을 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질문에 관한 한 가지 사실을 먼저 언급해야겠다. 이론적으로 밝혀진 건 아니고, 내가 생각하는 질문에 관한 단상이다. 거의 모든 질문에는 공통점이 있다. 현재의 위치와 내가 바라는 위치의 간격을 발견한다는 거다. 나에 관한 질문도 그렇다. 이 질문에 답을 하면, 나의 현재 위치 그러니까, 내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는 현재 상태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 상태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를 깨닫게 된다.


내가 원하는 방향이라면?

매우 흡족한 마음으로 적어 내려간다. 거침이 없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과 반대라면 과속방지턱으로 뛰어오르는 것처럼 마음이 덜컹거린다.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쓰는 동안, 마음이 매우 불편하다. 그리고 다짐한다. ‘이러지 말아야지’ 다짐대로 바로 바꾼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게 어디 쉽나? 그렇게 반복적으로 현재 내 위치와 내가 가고자 하는 위치를 계속 살피게 된다.


매일 꾸준히 하는 장점이 여기에 있다.

당장 바꾸지는 못하지만, 그 간격을 점점 좁힐 순 있다. 매일 확인하고 살피니 그럴 수밖에. 모든 것이 그렇지만,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하루 이틀 간격이 생기면 그 간격만큼, 현재 내 위치와 가고자 하는 방향의 간격은, 그만큼 더 멀어지게 되니 말이다. 매일 내가 하는 것이 있는가? 그것이 나를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매일 꾸준히 하는 그 무언가가, 내 생각과 행동으로, 나도 모르게 체화된다.

모든 말과 행동을 의식해서 하긴 어렵다.

자신도 모르게 뛰어나올 때가 있는 거다. 잘못 뛰어나온 것을 우리는, ‘실수’라고 부른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체화된 그 무엇이 나의 말과 행동에 그대로 묻어났다고 해도, 할 말은 없다. 어쨌든 내 안에서 나온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을 이렇게 바꿀 수 있다. “내가 누구였으면 하는가?” 내가 바라는 나는 어떤 모습이었으면 하는지, 생각하고 설정하는 거다. 그런 다음, 산 정상에 오르듯, 매일 한 걸음씩 옮긴다. 그러면 내가 원하는 그곳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것이 내 사명이 되고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 그 이유가 내가 누구인지 혹은 내가 누구였으면 하는지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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