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 배려

by 청리성 김작가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이 아닌, 타인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할 질문

내가 바라는 대로 해주라는 말을 들을 때, 떠오르는 이솝우화가 있다.

‘여우와 두루미’다. 다 아는 이야기이니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여우가 두루미를 놀리기 위해 식사 초대를 하고, 일부러 납작한 접시에 수프를 내놓는다. 부리가 긴 두루미는 당연히 수프를 먹을 수 없었고, 여우는 맛있게 수프를 먹었다. 여우는 이 상황을 즐겼다. 두루미도 이에 질세라, 음식 대접을 잘 받았으니 자신도 초대하겠다고 한다. 여우를 초대한 두루미는 긴 병에 담긴 수프를 내놓는다. 입이 짧은 여우는 당연히 수프를 먹을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두루미는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신은 맛있게 수프를 먹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여우와 두루미의 행동은, 딱 이 말에 맞는 행동이다. 더도 덜도 아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는, 배려다. 서로의 상황에 맞게 배려하지 않는 모습을 꼬집는다. 물론 여우가 먼저, 놀려주려는 심보로 했기 때문에 벌어진 상황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만약 여우가 악의 없이 정말 두루미에게 식사 대접을 해주고 싶은 마음에 초대했다고 하자. 그랬다면 긴 병으로 내놓았을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된다. 여우 집에는 접시가 전부였을 것이고, 자기 처지에서는 수프를 담기에 가장 적절한 도구가 접시라 여겼을 것이 때문이다. 내가 바라는 대로라면 말이다.


반대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두루미가 여우를 먼저 초대했다고 해도, 결과가 같을 가능성이 크다. 두루미 역시 자신이 바라는 대로라면 긴 병이고, 집안에 접시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각자가 세심한 배려심을 발휘했더라면 상대방에게 필요한 도구로 준비했을 테지만 말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는 배려도 마찬가지다. 내 처지에서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대로, 타인에게 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를 사용해서 말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권한다. 당연히 상대방도 좋아할 것으로 생각해서 말이다.

하지만 반응이 좋지 않으면 어떤가?

멀쑥해하기도 하고, 그 사람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아니, 왜?’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왜 그럴까? 내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으면 좋은 것이고 내가 싫으면 싫은 거다. 그런 나와 보폭을 맞추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이상한 사람이 된다. 진정한 배려는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상한 것이 아니고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할 때도 그렇지만,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럴 수 있겠구나!’라는 마음으로 인정해야 불화가 생기지 않는다. 여우가 내민 접시에 두루미가, ‘뭐 이런 게 다 있어?’라는 마음 보다, ‘아! 여우 처지에서는 그럴 수 있겠구나!’라는 마음으로 인정해 주고 이야기해 줄 필요가 있다. “여우야! 나는 입이 길어서 접시에 담긴 음식은 먹기 힘들어. 다음에는 긴 병이면 좋겠어.” 그랬다면 여우의 반응이 어땠을까? 그리고 둘의 사이는 어떻게 됐을까?


남이 나에게 해주길 바라는 마음은, 배려의 마음이다.

내가 배려 받기를 바라는 것처럼, 타인에게도 배려하는 마음으로 다가서야 한다. 자신은 배려를 받으려고 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의 마음은 내어놓지 않는다면, 좋은 관계가 유지될 수 없다. 배려는 내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마음에서 출발해야 그 접점을 찾을 수 있다.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닌, 타인이 원하는 것은?이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나는 이게 좋을 수 있지만, 타인의 처지에서는 저게 좋을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마음을 온전히 다 헤아릴 수는 없다. 그럴 때는 물어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헤매지 말고 물어보면서, 조금씩 알아가는 것도 방법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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