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지가 아닌, 안에 들어있는 씨앗에 상태에 따라 열리는 결과물
“지구상에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하나 있다. 사랑에 있어 강자는 누구이고 약자는 누구일까” 김민정 <언니가 있다는 건 좀 부러운 걸>
작가모임 단톡방에 기수장님이 올려주셨던 문장이다.
사랑에 있어 강자와 약자라…….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이라, 짧지만 깊은 생각에 빠졌다. 내가 올린 대답은 이랬다. “강자, 약자 보다 '박자'이고 싶네요. 때론 강하게 때론 약하게 그렇게 박자를 맞추는?” ‘강’과 ‘약’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오자, 머릿속에는 ‘강, 약, 중간, 약. 강, 약, 중간, 약.’하면서 음률이 떠다녔다. 그렇게 ‘박자’라는 의도치 않은(?) 단어가 떠올랐다. 거기에 더해 두 글자라는 점과 ‘자’라는 끝말도 같아, 절묘한 조합이라 생각됐다.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한 건 아니다.
처음에는 말마디를 따라 천천히 생각을 해봤다. 어떤 사람이 강자일까? 어떤 사람이 약자일까? 순수한 마음으로 대하는 사람이 강자고 악용하는 마음을 품고 대하는 사람이 약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강자와 약자가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내면으로 들어가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완전하게 안다고 할 순 없지만, 어렴풋이 짐작하는 정도는 된다.
못되게 구는 사람을 안쓰럽게 바라보면서부터였다.
처음에는, 막말을 퍼붓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보면서 ‘뭐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그런 모습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너무 한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면서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면서 몸이 떨리기도 했다. 말을 하는 내 목소리에서 떨림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러다 어떤 결정적 계기가 있던 건 아니었는데, 말과 행동만 보다가 눈빛을 보게 되었다. 그 눈빛을 보는데,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도대체 뭘 잃을까 두려워서, 저렇게 안절부절일까?’
손에 꼭 쥔 사탕을 뺏기지 않으려는 아이처럼 보였다.
성난 사자 같던 사람이 콧물 흘리는 아이처럼 작아졌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거인이 갑자기 난쟁이가 되는 장면이 나온다. 바람 빠진 인형처럼 순식간에 작아진다. 그 장면처럼, 그 사람이 그렇게 보였다. 그런 느낌이 든 순간부터 막무가내로 구는 사람이 작아 보이고 안쓰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왜 저렇게 안절부절못할까?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욕심이 없다거나, 아무런 걱정 없이 산다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무언가를 더 갖고 싶다고 그것을 얻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면서 불안하게 살지는 않다는 말이다.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재채기와 사랑하는 마음이다. 재채기를 참아본 사람은 안다. 특히 조용한 공간에서 참으려고 애를 쓰다 오히려 더 크게 소리가 터져 나와 민망했던 적도 있다. 사랑하는 마음도 그렇다. 자신도 모르게 돌아가는 눈빛과 자신도 모르게 올라가는 입꼬리는, 본인만 모르지 타인은 금세 눈치를 챈다. 사내 커플의 경우, 둘은 완벽하게 감췄다고 생각하지 이미 모든 직원들이 알고 있을 때도 있다. 그 사실을 알고 오히려 그 커플들이 놀라기도 한다.
감출 수 없는 게 하나 더 있다.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사과 열매가 맺었다는 건 사과씨를 심었다는 말이다. 배 씨를 심었는데 사과 열매가 맺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은 누군가의 마음 밭에 씨로 뿌려지게 된다. 중요한 건, 이런저런 포장지로 잘 꾸민다고 해도 그 사람의 마음에 심길 때는 포장지가 다 벗겨진다는 사실이다. 씨앗을 봉지째로 심진 않지 않은가? 그래서 아무리 좋은 표현으로 전달해도 의도가 순수하지 않으면, 타인에게 옳게 전달되지 않는다. 자신은 좋게 말했는데 상대방이 이상하게 듣는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이 가끔 있는데, 그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순수하지 않은 의도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을 전달할 때는 얼마나 잘 포장할지가 아니라, 얼마나 순수한지를 살피는 것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