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것이 인생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
할머니 의사로 알려진, 故 한원주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신 적이 있다.
여러 방송과 언론에서 다루기도 했는데, 나는 이웃 블로그에서 보게 되었다.
시간이 좀 지나서 정확한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캡처된 화면의 내용을 보면서, 故 이태석 신부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곁에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함께 했기 때문이다.
좀 더 편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 수 있는 삶을 등지고, 굳이 어려운 길을 걸으셨다.
우리가 보기엔, 가시밭길 같기도 하고 자갈밭 같기도 한 길이었지만, 그 길을 ‘사명’이라고 표현하셨다.
당신이 당연히 책임지고 해야 할 역할이라 생각하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역할을 억지로 힘겹게 하신 것이 아니라, 좋은 마음으로 하셨다는 것이다.
선생님의 얼굴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부드럽고 편안해 보이는 인상을 통해, 어떻게 이 길을 걸어오셨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희망’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희망이라는 단어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등에 진 삶의 짐이 힘겨워, 주저앉아있다가도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힘이 있다.
누군가에게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또한, 사명을 완수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 온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그것을 두 글자로 표현하면 ‘사명’이 된다.
그 이유를 찾고 역할을 잘하면, 이 세상을 떠날 때, 참 잘 살았다고 생각할 것 같다.
자신의 사명을 오래 지나지 않아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거의 세상을 떠날 때쯤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명을 찾을 때,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얼마 전에 깨달았다.
거저 받았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거저 받은 것이다.
노력이 하나도 안 들어갔기 때문이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대부분, 죽을뻔한 고비를 넘긴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어린 시절부터 돌이켜보면, 2~3번 그런 고비가 있던 기억이 난다.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위험했던 상황이 있었다.
그렇게 거저 다시 주어진 삶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은 선명해졌다.
‘나는 이 세상에 어떤 사명을 가지고 파견되었나?’
그냥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완수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삶을 통해 그 이유를 발견하고 실행하면서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다.
직업을 통해서, 가정을 통해서, 그 외에 다양한 역할을 통해서 그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다.
사명의 일정 부분을 완수했을 때, ‘보람’이라는 느낌의 선물을 받는다.
보람은 또 다른 보람을 낳기 위한 원동력이 된다.
그 느낌을 지속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이다.
인생에 슬럼프가 올 때도 있다.
머리와 마음이 울렁거리고 혼란스러운 때가 있다.
역에서 내렸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고, 왜 여기에 왔는지 잊은 느낌이다.
방향을 잃었다는 것은 목적과 이유를 잃은 것과 같다.
사명에 대한 혼돈 때문이다.
삶이 허무하고 무료하게 느껴진다.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에 대한 의심은, 목적과 이유까지 희미하게 만든다.
또렷이 보였던 목적이 희미하게 보이면, 확신의 무게 중심이 느슨해진다.
누군가 뚝 건드리면, 흔들리고 넘어질 것같이 불안하다.
혼란스러운 마음이 든다는 것은, 살아내고 있다는 증거다.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다.
‘몸살’에 걸리면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작은 충격에도 온몸에 통증이 전해진다.
아픈 상태인데, 그것을 몸살이라고 부른다.
몸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지금 마음의 몸살을 겪고 있다면, 그것은 마음이 살아나는 과정이다.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렇게 이 세상에 태어난 사명을 찾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