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도피

피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by 청리성 김작가
선택을 뒤집으면 나오는 것


가족과 함께 지방에 다녀오는 차 안, 라디오에서 신부님의 강연을 들었다.

평화방송에서 하는 강연이었다. 시간이 좀 지나서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용 일부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간추리면 이렇다.

“무언가로부터의 도피로 성당 봉사를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주부가 성당에서 봉사한다는 이유로 집안일을 뒷전으로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

삶의 치열함의 도피로 성당을 찾고, 성당에서 봉사하는 것으로 대신하면 안 된다는 말씀이셨다.


지방 출장을 많이 다니는 업무 특성으로, 주말에 쉬지 못하는 피곤함이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를 생각하면, 주말에 아이들을 돌보지 않아도 되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가끔 아내가 애들 좀 보라고 얘기하면, “나는 주말에도 일하잖아… 좀 쉬자.”라고 말하기도 했고, 아내가 알아서 그렇게 하도록 배려해주기도 했다. 내 일을 했다고 말했지만, 내심, 집안일과 아이들의 칭얼댐으로부터의 도피로 출장을 즐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 생활을 할 때도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

회사에서 워크숍을 가거나 MT를 갈 때 업무 분담을 한다. 항상, 자진해서 자신이 무엇을 하겠다고 먼저 나서는 사람이 있었다. 장을 보거나, 선발대로 먼저 이동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행동의 의도를 살펴보니,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가 왜 먼저 자진해서 나섰는지 알게 된 것이다.

하고 싶은 역할을 먼저 선택해서, 하기 싫은 역할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장을 볼 때는 업무시간에 간다. 그러면 그 사람은 일에서 도피할 수 있다. 선발대로 이동을 하면, 본대에서 가져와야 할 여러 가지 짐들로부터 도피한다. 힘쓸 일도 없고, 이것저것 챙겨야 하는 부담을 가질 필요도 없는 것이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힘듦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퇴사하는 사람들이, 퇴사 이유로 거론하는 주된 이야기가 있다.

공부하겠다고 하거나, 다른 영역의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퇴사한 직원들의 소식을 우연히 들어보면, 5명 중에 1~2명을 제외하고는, 말한 대로 하는 사람이 없다. 몇 개월 쉬거나 알아보다가, 다시 같은 업무를 하는 다른 회사에 취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말 한대로 계획을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다시 돌아오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퇴사할 때 가장 둘러대기 좋은 변명이라 그렇게 말할 때도 있다. 도피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퇴사를 선택하고, 그 이유를 그렇게 대는 것이다. 회사에서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무언가로부터, 피하고 싶을 때가 있다.

외근을 나갈 때, 버스에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눈을 붙이는 것도 일에서 잠깐의 도피가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도피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필요할 때, 더 많은 에너지를 쏟기 위한 충전의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도 그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일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푸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직장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

도피가 누군가를 이용하거나, 내가 손해를 보기 싫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적절하게 사용되어야 할 양념이 될 수 있다.


도피는 피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선택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자신이 선택한 것이고 그 책임 역시, 자신이 져야 한다.

단순히 벗어나기 위한 선택은, 더 위험한 도피가 될 수 있다.

이전 18화18. 사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