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하고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잘 다루는 법을 배울 때 얻게 되는 상태
군 생활을 하면서 많은 보직을 경험했다.
보병이라는 보직은 정해져 있지만, 다뤘던 총기류가 다양했다. 보병으로서 다룰 수 있는 총기류는 다 다뤘다고 보면 된다. 아! 장교만 사용하는 권총은 빼고 말이다. 거기에 더해, 대대 유격 조교도 했었다. 유격대에 조교가 있지만, 인원이 부족했다. 그래서 대대별로 유격 조교를 선발했다. 원하는 사람은 지원해서 2주간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참고로 유격 조교 훈련은 한겨울에 진행됐다. 훈련에 낙오하지 않고 끝까지 남은 사람이 선발되었는데, 우리 대대에서는 나 혼자 생존했다. 여기서 낙오란, 훈련을 포기하는 것도 있지만 다쳐도 낙오였다. 다쳤지만 끝까지 하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매달렸던, 안타까운 사람도 있었다. 훈련 마지막 날, 산에서 알통 구보를 하고 정상에서 군가를 부르는 데, 눈발이 휘날렸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아직도 그 장면이 너무 또렷하게 기억난다.
가장 힘들었던 보직은 따로 있었다.
소대 통신병이었다. 참고로 소대 통신병은 통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게 아니라, 체력이 좋아야 했다. 훈련할 때, 무거운 통신기를 지고, 소대장을 바짝 따라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간소하게 하는 훈련은 그렇다고 해도, 완전 군장을 하고 하는 훈련은 그야말로 초주검이 된다. 그것도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한여름이라면? 이동하는데 그늘도 없는 벌판이라면? 한 번은 온종일 훈련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는데, 더위를 먹었는지 머리가 핑 돌면서 내가 아닌 느낌이 든 적이 있었다. 선임은 빠져서 그렇다며 잔소리를 해댔다. 네가 한번 매고 종일 뛰어다녀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본의 아니게.
완전 군장 상태에서 통신기를 넣으면 혼자서 군장을 멜 수가 없다.
그래서 처음 멜 때는 두 명이 함께 군장을 들어준다. 그러면 나는 한쪽 팔씩 끼면서 군장을 멨다. 무게를 재보 진 않았지만, 최소 내 몸무게보다는 더 나갈 거라는 생각은 들었다. 그렇게 군장을 메고 걷다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면 어깨가 아픈 건 당연하고, 무릎에 무리가 가는 느낌도 들었다. 발바닥은 내 몸무게뿐만 아니라 군장의 무게까지 받아서인지, 이동하는 내내 충격이 전해졌다. 그렇게 훈련하면서 이동하다 쉬는 시간이 되면, 다른 사람들의 표정은 밝아지지만, 나는 마냥 반가워할 수가 없었다. 편하게 쉴 수 없기 때문이었다.
군장 때문이다.
한시도 통신기에 달린 수화기에서 떨어지면 안 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혼자서 멜 수 없는 무게 때문이다. 내려놨다가 다시 메도 되지만, 그러면 더 무거워진 느낌 때문에 이후 훈련이 더 힘들어진다. 그래서 군장을 걸칠 수 있는 담장이나 나무를 찾아서 걸쳐놓고 쉬었다. 잠시지만, 어깨부터 시작되는 온몸의 무게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쉬고 다시 걸쳐 멘 군장은, 완전히 내려놨다가 멘 군장보다 무게감이 덜했다.
왜 그럴까?
운동할 때도 이런 경우가 있다. 운동하면서 중간에 쉴 때, 의자에 앉거나 널브러져 있다가 다시 뛰려면 힘들다. 하지만 천천히 걸으면서 호흡조절을 하거나 스트레칭을 하면서 쉬면 다시 뛸 때 수월하다. 완전히 해제된 긴장감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긴장감이나 압박감 혹은 시련이라 불리는 것들에서 완전히 해방되길 원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너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환경에서 완전히 벗어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아니라는 것을 금세 깨닫게 된다. 그러면 그런 완전한 해방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말과 연결된다.
완전한 해방이 어려우니, 그것을 잘 다루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군장을 걸쳐서 쉬는 방법도 이런 방법의 하나다. 운동 중, 피로에서 회복하는 방법도 그렇다. 시련을 겪지 않기를 바라지 말고, 시련을 잘 다루는 방법을 익히도록 노력하는 게 좋다. 물이 무섭다고 물을 피해 다니지 말고, 수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인생은 폭풍우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말도 있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