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7. 원칙

by 청리성 김작가
말 마디가 아니라 그 이유에 대해 집중하지 않으면,
메시지를 놓치게 되는 약속

글은 형식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두괄식과 미괄식이다. 이외에도 다른 형식으로 불리는 글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형식은 이 두 가지라고 볼 수 있다. 두괄식은 말 그대로, 주장을 앞에서 하고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설명을 뒤에 붙이는 형식이다. 뒷받침하는 내용은 사례나 인용문을 주로 사용하게 된다. 미괄식은 이와 반대로 구성된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 즉, 주장을 맨 마지막에 한다.


두 가지 형식의 글에 공통점은, 주장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 말을 먼저 꺼내느냐 아니면 에둘러서 마지막에 던지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주장하는 내용이나 이 주장을 누구에게 하느냐에 따라 그 형식을 선택하게 된다. 글이 아니라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주저리주저리 얘기하면, “그래서 결론이 뭐야. 결론부터 말해!”라고 다그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두괄식을 선호하는 거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했는데 발끈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내가 왜 그런지 하나씩 설명하려는 거 아니야!”라고 다독이면서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이 사람은 미괄식을 선호하는 사람이다.


사람의 선호도 말고도, 잘 선택해야 효과를 보는 상황이 있다.

상대방이 원하는 상황을 말할 때는 두괄식으로 하고, 원하지 않는 상황일 때는 미괄식이 좋다. 전자의 경우, 원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만족한다. 그 사람에게 뒤에 따라오는 이야기는 사족일 뿐이다. 그 상황에 따른 요구 조건이 있더라도 무리가 되지 않으면 흔쾌히 받아들인다. 주고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좋은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크다. 후자의 경우, 원하는 않는 상황이라는 결과를 먼저 들으면 어떨까? 뒤에 따라오는 그에 합당한 이유는 하나도 듣지 않는다. 기분이 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론에 다다르기 전에 조금씩, 마음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둘 필요가 있다. 그러면 조금은 더 부드럽게 받아들 수 있게 된다.


어쨌든 중요한 건, 메시지다.

두괄식이든 미괄식이든 목적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거다. 자칫 메시지가 아닌 열거하는 사례나 이유에 빠지면, 그것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놓칠 가능성이 크다. 공동체에서 원칙을 정하는 이유는, 상황에 따라 다른 판단을 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야 공동체 구성원도 상황을 예상할 수 있고 인정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여러 해석이 떠돌게 되고 분위기는 어수선하게 된다. 누군가는 그 이유를 따져 묻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 이유를 계속 설명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연출된다.

그렇다면 무조건 원칙만 강조하는 것이 최선일까?

그 원칙을 정한 본래 목적은 생각하지 않고 말마디에만 집중하면 어떻게 될까?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모두가 자유롭게 생활하자는 의도에서 만든 원칙이 모두를 구속하게 만드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공동체가 정한 원칙이 현재에 부합하는지 재점검해야 한다. “원래 그랬어!”라는 말로 정당성을 부여하면, 이런 소리를 듣게 될 수도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원칙이란 말입니까?” 어디에 집중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메시지에 집중하는가? 사례에 집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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