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따라 달리하는 게 아니라, 같게 담아내야 하는 마음의 균형
‘호불호(好不好)’
좋음과 좋지 않음이라는 의미다. 호불호가 갈린다는 표현은, 어떤 한 가지를 두고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나눠질 때 사용한다. 내가 좋아하더라도 누군가는 좋아하지 않거나 반대의 상황이 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상대방의 의견을 묻지 않고 무조건 권하는 태도는, 그래서 좋지 않다. 너무 강력한 권유는 강요가 되는데, 이런 태도가 때로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는 강요를 넘어 강매하듯, 의견을 묻지 않고 “좋아하잖아!”라며, 어이없게 내 생각을 단정 짓는 사람도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누군가 그 사람에 대해 매우 안 좋은 기억을 이야기하면 의아한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내가 봐온 그 사람의 이미지로는 도무지 상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에 주변 사람들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다. 같은 무리(?)로 보기 때문에 안 좋은 이미지를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매우 안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에 대한 좋은 경험을 이야기하면 그렇다. ‘정말?’이라는 생각에 의심이 쉽게 떠나지 않는다.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일 수도 있겠다.
처음에 좋은 이미지를 담은 사람은, 웬만한 이유가 아니면 그 이미지가 쉽게 바꾸지 않는다. 안 좋은 이미지를 받은 사람도 그렇다. 정말 극적인 이유가 아닌 이상, 안 좋은 이미지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만족하게 할 수 없다는 말이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사람에 대해 누군가는 매우 좋다는 말을, 다른 사람은 매우 안 좋다는 말을 들으면 이런 생각이 더 강하게 올라온다.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가 뭘까?
음식이나 장소 등은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그렇게 갈리는 이유가 뭘지 궁금해진다. 성향에 차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는 나와 결이 맞고 안 맞고의 문제지 좋고 안 좋고의 문제는 아니다. 성향이 맞지 않아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성향이 맞아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 달인 사람들을 보면, 둘 다 똑같은 성향이라 그렇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의도를 해석하는 차이라 생각한다.
한 사람이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그 메시지를 어떤 의도로 해석하는지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 순수한 마음으로 전달한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과 뭔가 있을 거라는 의심에 눈초리로 바라보는 사람에 해석은 다를 수밖에 없다. 악의적인 의도로 전달한 메시지를, 누군가는 선한 의도로 해석한다. 뭐에 홀렸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 정도로 말이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통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을 만족하게 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을 만족하게 하려다, 아무도 만족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어쩌면 만족이라는 부분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니 신경을 쓰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다만 같은 의도를 가지고 전달할 필요는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좋고 싫음을 떠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같은 의도에 담아내는 노력은 필요하다. 그러는 데 필요한 것이 자신의 시간을 갖는 거다. 나를 살피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잘못된 의도로 전달한 메시지가 있다면, 바로잡을 수 있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