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더 중요한지 보다 무엇이 더 먼저인지를 따질 때, 선택할 수 있는 우선순위
어떤 공동체든 그 공동체를 잘 운영하기 위해 조직을 구성한다.
회사에는 대표가 있고, 그 아래 필요한 부서를 만든다. 회사 전체를 운영하는 본부 부서를 비롯하여 실무 부서를 구성한다. 실무 부서는, 회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맞게 매출을 일으키는 부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작게 시작하는 회사의 경우, 하나의 사업 아이템을 중심으로 인원을 구성하는데, 각 인원이 하나의 부서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렇게 구성된다. 한 명이 기획 및 영업을 하고, 한 명이 내부 업무처리를 한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자금을 관리한다. 지금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라 불리는 회사도, 처음에는 이렇게 시작한 곳이 많이 있다.
회사만 조직을 구성하는 건 아니다.
취미로 모인 동아리도 조직을 구성한다. 회장, 총무, 회계 등 필요한 역할을 선정하고 그에 적합한 인원을 선출한다.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평신도들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역할에 따라 조직을 구성하고, 그에 따른 인원을 선출한다. 이 공동체의 이름을 ‘사목회’라고 표현한다. 나는 2년 전까지, 청소년분과장이라는 역할을 3년 정도 맡은 적이 있었다. 올해 9월부터 새로운 임기가 시작되는데, 본의 아니게(?), 총무 역할을 맡게 되었다. 가장 일이 많고 신경 쓸 게 많아, 절대 연임을 시키지 않는다는 자리라고 한다.
여러 여건으로 봤을 때, 나는 적합하지 않다.
무엇보다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크다. 2년 전까지 청소년 분과장을 할 때는, 시간적 여유가 그리 필요하지 않았다. 그때는 주말 출장도 자주 다니던 때였음에도 큰 무리 없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총무는 그렇지 않다. 얼핏 듣기로도 성당에서 거의 살다시피 해야 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 그런 비슷한 상황을 간접적으로 지켜보기도 했다. 그래서 주로 자영업을 하시는 분이나 시간을 조금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분이 맡아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어렵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는 의견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직 인수인계를 받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총무가 돼야 할지 생각해 봤다.
이런 고민 중에 미사 참례를 하게 되었는데, 묵상 시간에 이런 모습이 떠올랐다. 누군가 총무로서, 어떻게 할지를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미사와 전례에 더 많이 참석하는 총무가 되겠습니다. 기도를 더 많이 하고 영적 독서를 더 많이 하는 총무가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제 뜻대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잘 새겨듣고 그 뜻을 실행하는 총무가 되겠습니다.” 어떤 총무가 돼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단박에 해결되었다. 어쩌면 교회에 봉사하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말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역할을 맡으면,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잘하고 싶은 의욕에서 시작되는 고민이다. 좋은 태도라고 생각한다. 책임감을 느끼고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겠다는 의지에 표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의욕 때문에 간과하는 것이 생긴다. 왜 하는지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왜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 공동체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왜 필요한지를 먼저 고민하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어떻게’에 대한 답이 명확하게 되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게 된다. 가장 안타까운 모습이, 정말 열심히 하는데 방향을 잘못 잡아 힘들어하는 사람이다. 자신도 힘들어하고 주변 사람들도 힘들어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더 잘해보겠다고 의욕을 부린 건데, 서로 힘들어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진다.
세상에는 중요한 두 가지가 공존해야 할 때가 있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하기는 무리가 따른다. 따라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할 때, 혼란스러운 마음을 느낀다. 신앙에서는 ‘기도와 말씀’ 그리고 ‘실행’이 그렇다. 무엇이 더 중요할까? 답하기 어렵다. 둘 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질문을 바꿔야 한다. 무엇이 먼저일까? 그러면 답하기가 좀 더 수월해진다. 중요도를 따지다 머뭇거리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고, 힘이 없는 정의는 무능이다.”
‘정의’와 ‘힘’의 중요성을 강조한 표현이다. 둘 다 중요하다는 말이다. 어느 하나가 빠지면 폭력이 되거나 무능함이 된다. 그렇다면 둘 중에 무엇이 먼저여야 할까? 힘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의가 우선이어야 하지 않을까? 힘이 필요한 이유도 그리고 힘이 사용돼야 하는 이유도,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더 중요할까?라는 질문에서 무엇이 더 먼저일까?라는 질문으로 바꾸면, 조금은 결정하기가 수월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