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 눈가리개

by 청리성 김작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사람에게 무장된 장치


소풍을 가면, 참 많은 놀이를 했다.

그냥 공터인데 손수건 하나면, 할 게 참 많았다. 가장 많이 했던 건 ‘손수건 돌리기’다. 동그랗게 둘러앉아 서로의 손바닥을 치며 노래를 부르면, 술래가 천천히 원을 돈다. 그러다 술래가 갑자기 뛰기 시작하면, 그 지점에 있던 사람들이 자신에 뒤를 돌아본다. 그러면 거의 그쯤, 누군가의 등 뒤에 손수건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나다 싶으면, 그 손수건을 집고 벌떡 일어나 뛰기 시작한다. 어정쩡하게 놓인 손수건을 두고, 서로가 자신이 아니라고 우기다, 잡힐 때도 있다. 그때는 술래가 지목한 사람이 술래가 된다. 잔디밭에서 할 때는, 과도한 의욕이 몸보다 앞서, 옆으로 슬라이딩하듯 넘어지기도 한다. 그 모습을 보는 것도 하나의 재밋거리였다.


손수건을 이용해서 많이 했던 놀이가 또 있다.

‘술래잡기’다. 술래의 눈을 손수건으로 가린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은 술래 주변에서 조심스레 도망을 다닌다. 손뼉을 치며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도 하고, 동물 소리를 내기도 한다. 술래가 거의 다가왔을 때, 다른 친구를 끌어들여 잡히게 하기도 한다. 영문도 모른 채 술래가 된 친구는 억울하다며 술래를 거부하기도 하고 싸움으로 벌질 때도 있었다. 술래가 아닌 친구들은 앞을 보지 못하는 친구를 놀리는 재미에 빠져, 바닥에 뒹굴기까지 했다. 바로 앞에 있지만 잡지 못하는 모습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던 거다.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을까?

내가 잘 보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모습 때문이다. 영화의 결말을 알면 주인공이 헛다리 짚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게 보인다. 이리 가면 될 것을 저리 가고 있으니, 속이 터질 때도 있다. 함께 보는 사람들이 있으면, 서로의 손을 부여잡고 안타까움을 나누기도 하고 손가락질을 하며 질타하기도 한다. 답답함이 화로 번지는 순간이다. 처음에는 안쓰러운 마음에 도와주려 하지만, 그 도움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헛다리를 짚으면, 안타까움이 화로 돌변한다.


요즘 보면, 눈가리개를 한 사람이 더러 보인다.

실제 손수건으로 눈을 가린 건 아니지만,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아! 이렇게 말하면 단정 짓는 것 같으니, 말을 바꿔야겠다.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더러 있는 듯하다. 자신만 눈가리개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눈가리개는 명확한 판단을 내리게 하지 못하는 방해물인데, 그 종류는 다양하다. 대표적인 것인 혈연, 학연, 지연 뭐 이런 거다. 웬만하면 좋아 보이고 어지간하면 포용할 수 있는 눈가리개다. 주변에서 아무리 눈가리개를 벗으라고 해도 새겨듣질 않는다. 자신은 눈가리개를 하지 않았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공동체 의식은 좋은 문화다.

함께 하는 사람들을 챙겨주고 아껴주는 마음을 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못된 공동체 의식은 매우 위험하다. 공동체의 결속을 가져오기는커녕 불화에 원인이 되고, 더는 희망이 없다는 불안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공동체 범위를 좁히면 좁힐수록 악취가 퍼진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집단이기주의’라고 표현하고, 경계하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이라는 단어 앞에, 어디 어디 소속 혹은 출신이라 수식어가 붙으면 어떻게 될까? 그곳에 소속되지 않았거나 그 출신이 아닌 사람 이외에는, 공동체가 아닌 게 된다. 사람은 그냥 사람으로 바라봐야 한다. 더는 수식어를 붙여, 편을 가르지 않고 집단이기주의로 몰아가지 않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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