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2. 시야

by 청리성 김작가
노력하고 집중하는 대로 보게 되는 모습의 범위

어릴 때는 안경을 쓰고 싶었다.

안경을 쓰고 있는 것만으로도 공부를 잘하고 똑똑해 보일 거라는 착각 때문이었다. 초등학생 때였다. 안과에서 시력 테스트를 하는데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물었다. “너 안경 쓰고 싶니?” “아, 아니요!” 뜨끔했다. 안경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보이는 것도 안 보인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 보인다고 해서 다 안경을 쓰는 건 아니었나 보다. 아니면 거짓말 테스트처럼 선생님이 나를 테스트했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아직은 안경을 쓸 때는 아니라고 하셨다.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쓰고 싶은 안경도 못 썼는데, 거짓말했다는 죄책감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중학생이 되고 진짜 시력이 나빠졌다.

시력이 나빠졌다는 표현보다, 다쳤다는 표현이 맞겠다. 머리가 좀 길었는데, 눈에 거슬리는 머리를 쓸어올리다 교복 옷깃에 왼쪽 눈을 몇 번 찔렸다. 나중에는 눈에 실핏줄이 터졌고, 눈에 주사까지 맞으며 치료를 했다. 망막이 약해져서인지 햇빛을 받으면 눈이 시렸다. 그래서 자연스레 눈을 찡그리게 됐는데, 그런 표정을 본 선생님들이 한마디씩 하셨다. “어디 버르장머리 없이 선생님 보고 인상을 써!” 억울했다. 이유를 설명하려고 했지만, 설명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고개만 숙였다. 나중에는 오른쪽 눈을 가리면 앞이 뿌옇게 보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 심했다.


오른쪽 눈으로만 살다 보니, 자연스레 시력이 떨어졌다.

그래서 그토록 쓰고 싶던 안경을 쓰게 됐다. 처음에는 좋았다. 왠지 있어 보이는 느낌 때문이었다. 갑자기 공부를 잘하는 모습이 된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그때는 참 공부를 안 했는데, 생전 안 보던 책을 읽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하다. 그렇게 공부를 싫어하고 책을 싫어했던 내가, 책만 읽는다고 아내한테 구박받기도 하고 심지어 책 2권을 출간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책을 읽을 예정이고, 더 많은 책을 출간할 계획도 있으니 참 신기하다. 아무튼.


운동을 좋아했던 나에게 안경은 귀찮은 존재가 되어갔다.

땀과 함께 흘러내리는 안경을 계속 올려야 했다. 좌우로 시선을 돌리는데 눈에 안경테가 걸려 제대로 보지 못해 답답하기도 했다. 몸이 부딪혔을 때 안경이 떨어져 망가지기도 했다. 그래서 과감하게(?) 벗어버렸다. 조금은 불편해도 큰 지장은 없었다. 그렇게 적응을 했는데 성인이 돼서 다시 안경을 쓰게 되었다. 그렇게 몇 번을 쓰고 벗기를 반복했다.


한 번은 운전하는데, 거리감이 떨어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러다 안 되겠다 싶어 안경 전문점을 찾았는데, 노안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들었다. 45세 이후부터는 노안이 시작된단다. 벌써 그렇게 됐나 싶기도 했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에 안경을 맞췄다. 2개를 맞췄다. 왼쪽은 난시가 심해서 평소에 쓰는 안경 하나를 맞췄고, 하나는 책을 읽을 때 사용할 돋보기를 맞췄다. 다초점 렌즈를 추천하기는 했지만, 가격대가 높았고 또다시 변심(?) 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맞추지 않았다.


1년 가까이 안경을 잘 쓰고 다녔다.

생각보다 변심하지 않는 나를 보고 기특하게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며칠 전, 버스가 올 시간에 맞춰 급하게 나오게 됐다. 그렇게 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안경을 안 쓰고 나온 거다. 아차 싶었지만, 다시 돌아가기는 뭣했다. ‘그래, 하룬데 뭘!’ 그렇게 출근을 하고 하루를 보냈는데, 괜찮았다.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생활할 만하겠는데!’ 그렇게 변심을 하고 지금은 안경을 쓰지 않고 다닌다. 뚜렷하게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지낼만하다. 혹시 몰라 안경은 차에 넣어두었다. 평소는 그렇다고 해도 운전할 때 잘 보이지 않으면 사고로 연결될 수 있으니 말이다.

안경을 쓰지 않은 모습을 처음 본 지인이, 안경에 안부(?)를 물었다.

그래서 안경을 쓰지 않은 사연을 얘기해 줬다. 그 얘기를 듣더니 자기 경험 하나를 얘기해 줬다. 예전에, 한 직장 후배가 있었다고 한다. 안경을 쓴 친구였는데, 언젠가부터 탕비실에서 안경을 벗고 먼 산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더란다. 그때는 멍 때린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두 달 정도 지났나? 안경을 벗더란다. 그는 멍 때리고 있던 게 아니라, 먼 산을 바라보면서 눈 근육을 단련한 거다. 노안이 오고 잘 안 보이는 이유가, 눈 근육이 약해져서 그렇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나면서, 산에 올라가 먼 곳을 주시하면 시력이 좋아진다는 말을 들은 기억도 났다. 그래서 나도 도전해 보기로 했다.

가만히 있는데 그냥 보이는 건 없다.

보려고 노력해야 보인다. 눈이 좋지 않은 사람은 먼 곳을 바라보는 연습을 통해 눈 근육을 단련해야, 좋은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 물론 한계가 있겠지만 말이다. 시력도 그렇지만, 사람의 모습도 그렇다. 내가 어떤 모습을 보기 위해 노력하는지에 따라 그 모습이 보인다. 좋게 보려고 하는 사람은 뭘 해도 좋아 보인다. 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뭘 해도 얍삽해 보인다. 그렇게 바라보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보기를 집중하고 있는가? 내가 보이는 게 불만족스럽다면 주변 상황이 아니라, 내가 보려는 노력을 그렇게 하고 있진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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