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받은 것을 떠올리면서 선택이 아닌 필수로 해야 할, 마음 내려놓음
살아가는데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용서하는 거다. 설령 용서했다고 해도, 잘 잊지 못한다. 잊힐만하면 떠오른다. 그렇게 떠오른 생각을, 그냥 생각에서 멈추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걸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게 된다. 우리는 이런 것을, 뒤끝이 있다고 표현한다. 뒤끝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 차이가 크거나 작거나 혹은 드러나거나 드러나지 않거나 할 뿐이다. 사실 전부 잊는다는 건 매우 어렵다. 상처에 크기가 클수록 더 그렇다. 몸에 상처가 났다가 아물어도 흉터가 남는 것처럼, 그렇게 마음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던 흉터가 고개를 들면, 용서했던 마음이 다시금 갈라지게 된다. 그만큼 용서가 어렵고 잊기가 어렵다. 그래도 용서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자신을 위해서다. 자신의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용서가 필요하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계속 출렁거린다.
평화롭지 않다는 말이다. 평화롭지 못한 마음은, 그 어떤 것도 좋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또 다른 누군가와 부딪히게 된다. 주변 상황이 점점 꼬이면서, 악순환의 고리가 하나씩 연결된다. 사실 나도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가끔 떠오르는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계기로 불쑥 뛰어오르면, 그 생각 안에서 맴돌게 된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불편한 마음은 계속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마음이 허하다. 마음만 불편하고 그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서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굳게 닫힌 이 마음에 문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열 수 있을까?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해 보자.
“내가 받은 용서는 얼마나 될까?”
얼핏 생각해도, 용서받았던 크고 작은 일들이 떠오른다. 모르고 했던 잘못부터 안일하게 생각해서 벌어진 문제까지 한둘이 아니다. 안 좋은 마음을 품고 했던 잘못도 분명 있다. 정말 아찔했던 장면도 떠오른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용서받았다. 대가를 직간접적으로 치른 일도 있지만, 대체로 잘못의 크기에 비하면 제대로 값을 치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세세하게 따져보진 않았지만, 내가 용서를 한 것보다 받은 것이 더 많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처럼, 그렇게 살아온 건 아닌지 살펴보게 된다.
용서뿐만이 아니다.
불평이 생길 때마다 자신에게 질문해야 한다. “내가 받은 것이 무엇인가?” 아무것도 받은 게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마음에 불평이 가득할 때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잠시 호흡을 고르고 차분하게 생각해 보면, 용서받았던 것처럼 내가 받은 것이 하나둘씩 떠오르게 된다. 받았다는 의미는 내 손에 딱하고 쥐어진 것이 아니다.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는 것이 그렇고,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받은 것이 그렇다. 배려가 그렇고, 격려가 그렇다. 그렇게 하나둘씩 생각하면, 예상보다 많은 일이 떠오른다. 이미 받은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가지고 있다고 내 것도 아니다. 받은 것을 기억하면,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