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5. 블록

by 청리성 김작가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더라도, 나에게 필요한 방향이라 믿고 올라서야 하는 지점

가만히 인생을 돌아보면, 감사한 일들이 떠오른다.

가장 중요한 시점, 어디로 가야 할지 머뭇거릴 때 내 앞에 디딤돌이 하나씩 올라왔다. 마치 ‘징검다리 게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징검다리 게임을 설명하면 이렇다. 두 개의 블록을 가지고 시작한다. 출발점이 있고 도착점이 있다. 두 개의 블록 중 하나를, 출발점에서 뛸 수 있는 정도의 거리까지 던진다. 그리고 그 위로 올라선다. 들고 있는 하나의 블록을 그 앞에 놓고, 그 위로 옮겨간다. 전에 밟고 있던 블록을 들고 다시 앞에 놓는다. 이런 동작을 반복하면서 도착점까지 가는 게임이다. 블록을 집어 들고 앞으로 놓는 동작은 매우 귀찮다. 하지만 블록이 없으면 그리고 그런 동작을 하지 않으면 목표 지점까지 갈 수 없다. 따라서 억지로라도 해야 한다.

게임은 귀찮으면 천천히 하거나 안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 내가 목표하는 곳이 있다면 그곳을 가기 위해 그 어떤 귀찮은 동작 혹은 역할도 마다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게임처럼 내가 임의로 블록을 어디에 놓을지 결정할 수 없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떠오르는 블록이 있으면 그곳으로 옮겨가야 한다. 내가 가는 방향과 맞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에 편안한 한숨을 내뱉지만, 그렇지 않거나 오히려 반대 방향에 블록이 올라오면 시름 섞인 불편한 한숨을 내뱉게 된다. 하지만 이 인생 블록은 참 희한한 게 있다. 내가 원하는 방향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도 아니고,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고 해서 다 나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가 그랬다.

몇 번 언급했듯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에,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곳에 블록이 올라왔다. 직업과 직장 그리고 결혼이 그랬다. 처음에는 그랬다. ‘왜 나한테만….’ 그때는 그 이유를 찾을 힘도 그리고 견딜 힘도 없었다. 그냥 세월의 흐름에 따라 끌려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흐르는 시냇물에 올려놓은 종이배처럼, 그렇게 잘 떠내려가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그 처음이 바로, 결혼 시점이었다.

계획보다 2년 정도 앞당겨서 하게 되었다. 그때는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이었다. 열심히 해서 합격하고 임용이 돼서 돈을 조금 모은 다음, 결혼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양가 부모님이 날짜를 덜컥 잡으셨다. 우리는 둘 다 어렸기에, 그냥 따라야 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하느님께서 다 뜻이 있으시겠지!’ 작고 소박한(?) 믿음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순탄치 않았다.


경제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많이 부족해서 어려움이 컸다.

그렇게 18년의 세월 동안 딸 셋을 낳으며 함께 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생각했지만, 결혼하고 얼마 안 돼서는 ‘왜 이리 빨리했을까?’ 후회하고 한탄했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는 일찍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형편이 나아져서는 아니다. 살아보니 그렇다. 아내는 절대 아니라고 말하지만 말이다.


두 번째는 직업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한 일 년을 보냈지만, 임용고시에서 떨어졌다. 당연히 합격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 충격은 더 컸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가, 우리 첫째가 태어나기 2달 전이었다. 교사 이외에는 생각한 직업이 없었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할 수 있는 건 이것저것 다 하고 있던 찰나, 내 앞에 지금에 직업 블록이 쓱 하고 올라왔다. 이 업종으로 16년에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생각지도 않은 직종이었고 해보지 않은 일이었지만, 정말 재미있게 잘 했다. 작년에 업무 부서가 바뀌긴 했지만, 오랜 시간 일을 하면서 정말 적성에 잘 맞는다고 생각하며 일했다. 생각지도 못한 블록이 나에게 좋은 방향을 안내해 줬다.


세 번째는, 직장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직업 블록이 올라와, 8년 정도 재미있게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순간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잘못한 것도 많았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나는 억울하게 직장에서 밀려나게 됐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아이가 셋 있는 아빠였고, 모아둔 돈은커녕 빚만 수북하니 쌓여있는 상태였다. 새로운 직장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고민이 되었다. 회사에서는 밀어내는 강도가 점점 세졌고 여기서 물러나면 나는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고민에 휩싸여 밤거리를 걷고 있는데 이런 음성이 들렸다. “아무 걱정 하지 마라. 언제나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뜨끔했다. 그랬다. 지금까지 결혼도 직업도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 뜻이 있겠지, 하며 받아들였다. 그 생각을 하니 갑자기 용기가 용솟음쳤다. 다음날 바로 사표를 냈다. 회사를 나와서 이것저것 해보려고 했는데 잘되지 않았다. 한 달 가까이 시간이 지나자 불안한 마음이 살며시 올라오고 있었다. 그때, 지금 회사를 만났다. 그리고 올해 곧 만 8년을 맞이한다.


돌이켜보면 모든 게 감사한 일이다.

블록이 올라온 각 지점에 ‘만약 블록이 올라오지 않았다면?’이라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생각조차 하기 싫다. 상상도 안 된다. 그런데도, 작은 것 하나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나를 발견한다. 더 큰 것을 받았음에도, 작은 것 하나 받지 못했다고 불편한 마음을 품고 있다. 아직 멀었다. 그래서 사람이겠지? 앞으로 어떤 블록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 블록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든, 분명 나에게 필요한 블록이라는 것만은 믿고자 한다. 그렇게 했을 때 내가 봤던 큰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걱정보단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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