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0. 나그네

by 청리성 김작가
삶은 지상에 잠시 왔다 돌아간다는 것을 깨닫고 그 삶을 즐기는 사람


“여행은 되돌아올 집이 있어서 즐겁다.”

여행의 다양한 정의 중, 가장 많이 음미했던 표현이다.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하면, 되돌아올 집이라는 것은 공간에 의미만 있는 건 아니다. 그렇게 떠나고 싶었던 일상이기도 하다. 어쨌든 돌아올 곳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 편하게 그리고 즐겁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말이다. 즐겁게 여행을 한 사람도 집에 들어오면, “그래도 집이 최고네!”라고 말하는 건 빈말은 아닐 테다. 만약 떠났는데 돌아올 곳이 없다면 어떨까? 돌아올 곳이 없다면, 그것을 여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여행이 끝나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초조하고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여행을 인생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인생을 ‘소풍’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자신을 ‘지상 나그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삶을 마감하면 다시 돌아간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인생도 결국, 돌아갈 곳이 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말에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에 의미 말이다. 돌아올 집이 있으면 편안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풍경을 감상하기도 하고 맛난 음식을 마음껏 먹기도 한다. 때로는 편안하게 푹 쉴 수도 있다. 그 어떤 것을 하더라도 새롭고 좋다.

돌아올 때는 과감하게 내려놓고 돌아온다.

아쉬움이 남을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이 멋있다고 그 풍경을 가져올 순 없다. 내 입맛에 딱 맞는다고 해서, 그 식당을 가져올 수도 없는 노릇이다. 숙소가 아주 마음에 든다고 그 숙소를 가져올 수도 없다. 그래서 여행을 갔다가 그곳이 아주 마음에 들어, 집을 그리로 옮겼다는 사람은 몇몇 봤다. 이렇듯 자신이 옮기지 않는 이상,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작은 돌이나 기념품 등 소소한 물건 몇 가지 그리고 사진만 가져올 수 있다. 아! 보이진 않지만, 추억 하나를 마음에 담고 올 수 있다. 그뿐이다.


지상 나그네인 우리는 어떠한가?

지상에 여행을 온 우리말이다. 어차피 여행을 온 것이니 돌아가야 한다. 여행의 끝은 죽음이다. 죽으면 우리는 왔던 그곳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죽은 사람을 일컬어, 돌아가셨다고 표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창세 3,19) 내 카톡 프로필에 있는 성경 문구다. 재의 수요일이면 머리에 재를 받으면서 듣는 말씀이다. 지금까지 수십 년을 들었지만, 지난 재의 수요일에 들었던 말씀은 새롭게 들렸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잊지 말자는 마음에 카톡 프로필에 올려놓았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자.

지상 나그네인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나그네의 모습이 아닌, 마치 이곳으로 집을 옮긴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기도 한다. 절대 떠나지 않을 사람처럼 말이다. 여행을 마쳐야 하는 시간이 온다는 것을 알았을 때가 돼서야, 나그네가 집주인처럼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먼저 돌아가신 분들은, 다양한 표현으로 나그네임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중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이것이다.

여행처럼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는 말이다.

여행은 언제 오겠냐는 마음으로 그곳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것을 보고 듣고 맛보고 즐긴다. 하지만 지상 나그네는 미룬다. ‘나중에’라는 말을 입에 달면서 미룬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할 것에 더 마음을 쓴다. 해야 할 것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거기에 몰두해서 정작 소중한 것을 간과할 때가 있다. 그것을 경계하라는 말이다.


삶은 여행이다.

여행처럼 생각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여행을 갔을 때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생각해 보는 거다. 그리고 삶에 적용해 보는 거다. 매 순간을 그렇게 할 순 없지만, 마음이 갑갑한 느낌이 들 때, 무언가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이 생길 때 생각해 보면 좋겠다. 그러면 지금 움켜쥐려고 하는 그것이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기억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여행할 때도 그렇지 않은가? 최고의 풍경이라고 극찬하지만, 오래지 않아 잊는다. 그리고 다른 풍경을 보고 다시 최고의 풍경이라 말한다. 그 말을 계속 반복하고 앞으로도 반복할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이 또한 지나간다는 말이다. 그러니 너무 움켜쥘 필요가 없다. 그렇게 힘 뺄 시간에 더 좋은 것을 음미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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