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2. 편안함

by 청리성 김작가
내가 가지고 있거나 누리고 있는 게, 원래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오는 마음


오래전 기억이 하나 떠오른다.

내가 지금 회사에 들어온 게 만 8년이 넘었는데,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니, 7년 정도 된듯하다. 승용차 2대로 이동할 만큼, 회사 인원이 많지 않을 때 간 워크숍이었다. 서해 쪽으로 기억되는데, 펜션을 빌려 1박 2일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특별한 주제 없이, 재미있게 보내고 오는 게 목적이었다. 펜션에 공터가 있어 족구도 하고, 고스톱도 쳤다. 펜션에서 해먹을 수 있는 가장 맛난 음식은 뭐다? 뭐니 뭐니 해도 숯불에 굽는 고기다. 고기 질을 떠나 숯불에 구우면 다 맛있는 고기가 된다.

잘 놀고 잘 먹고 한, 그때.

사장님이 선물(?)을 하나씩 주셨다. 봉투였다. 그 안에는 10만 원이 들어있었다. 용돈이라고 하시면서 건네주셨는데, 뜻밖에 공돈이라 그런지 기분이 더 좋았다. 이때, 사장님이 제안 하나를 하셨다. 어차피 생긴 공돈이니, 이 돈으로 게임을 하자는 제안이었다. 게임은 간단하면서도 명확한, 그리고 빠르게 결정지을 수 있는 가위바위보였다. 1만 원씩 내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가져가는 게임이었다. 다 잃는다고 해도 10판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하고 싶지 않았다. 게임을 잘해서 더 가져갈 수도 있지만, 지금 받은 이 돈을 그냥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떤 결과로 마무리됐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하게 기억나는 건 있다. 공돈이니 다 잃어도 손해가 난 건 아닌데, 이기지 못하면 마치 빼앗긴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은 얻었을 때의 기쁨보다 잃었을 때의 아픔을 더 무겁게 느낀다.” 맞다. 나도 그렇다. 얻는 것도 좋지만, 잃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좋은 말로는 아끼는 것이라 하겠다. 고정비에 무서움을 깨닫고 나서부터였다. 복학해서 혼자 살고 싶은 마음에, 자취를 했다. 집에는 늦게 들어가는 날이 많았고 밥도 거의 밖에서 먹었다. 잠만 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하지만 집과 관련된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나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가계부를 썼는데, 그때 고정비에 무서움을 알았다. 안 먹고 안 써도 반드시 나가는 돈 말이다. 그렇게 가계부를 쓰면서 쓸데없이 나가는 돈을 아끼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이 습관이 지키려는 사람으로 만든 듯하다.

과감하게 지르기보다는 어떻게든 지키려는 성향이었으니 말이다. 올 초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이 틀을 조금씩 깨고 있다. 그렇다고 어딘가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그러는 건 아니다. 써야 할 곳에는 써야 한다는 마음으로 돌아섰다는 말이다. 꼭 듣고 싶은 교육이 있다면 비용이 좀 들더라도 듣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선물해야 한다면 금액을 먼저 따지던 내가,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고르기 시작했다. 무조건 꽁꽁 움켜줬던 손을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어차피 내 것은 없다는 생각이, 가슴에 내려앉고부터였다. 어차피 내 것은 없는데,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없었는데, 무엇을 그리 쥐려고 하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드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긴장 상태에서는 힘이 들어간다. 오랜 시간 힘을 주고 있으면 어떤가? 굳어진다. 심하면 쥐가 올라올 때도 있다.


그 힘을 빼니 좀 편안해졌다.

움켜쥐려는 욕심이 날 때마다 그날의 공돈을 떠올리려고 한다. 어차피 거저 받은 돈인데 다 잃으면 어떤가! 다 잃어도 손해는 아닌데 뭐 그리 안절부절못했는지. 재미있게 가위바위보를 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잃든 따든 가위바위보를 하는 쫄깃한 맛을 즐기는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 어차피 내 것은 처음부터 없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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