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들고, 닫힌 문이 아닌 새롭게 열리는 문을 기다릴 때 얻을 수 있는 선물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네!”
이런 말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아마 표현은 달리했을지 몰라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 번쯤은 이런 상황을 겪어봤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람 앞에 꺼져가는 촛불처럼 모든 게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도움으로 불씨를 살린 일 말이다. 정말 생사가 오갔거나 인생의 방향이 틀어질 만큼 긴박한 상황도 있을 테고, 순간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일시적인 일도 있을 테다. 상황에 중요도를 떠나, 당사자에게는 세상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니, 사실 체감 중요도는 그리 차이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마치 이런 느낌이다.
운동회에서 했던 징검다리 건너기 게임을 기억하는가? 두 개의 판을 가지고 출발점에서 목적지까지 가는 게임 말이다. 판 하나를 바닥에 두고 다른 판을 가고자 하는 방향에 놓는다. 자신의 역량(?)에 따라 거리는 가까울 수도 멀 수도 있다. 그렇게 앉았다 섰다, 그리고 판을 놨다 들었다를 반복하면서 목적지까지 간다. 아이들은 신나게 하지만, 허리가 안 좋은 어른들한테는 매우 곤욕스러운 게임이다. 그래도 이 게임은 자신이 판을 원하는 자리에 놓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면 어떨까?
징검다리 판을 내가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판위에 서 있으면 어디선가 다른 판이 올라온다.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옮길 수 있는 정도의 거리에 판이 올라오면 마음이 편하다. 안정적인 느낌이 든다. 하지만 시간 간격이 일정하지 않거나 무리해야 건널 수 있는 거리에 판이 올라오면 매우 긴장된다. 지금 서 있는 판이 시간이 지나면 점점 내려가, 그 위에 마냥 서 있을 수도 없으면 긴장감은 더하다. 그냥 게임이라면 “에이, 모르겠다.”하고 말겠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생사가 오가거나 삶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는 문제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렇게 비유하니 한창 유명했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떠오른다.
그 드라마의 마지막 게임이 징검다리 건너기였다. 판이 올라오고 내려간 건 아니지만, 어떤 판은 강화유리로 되어있었고, 어떤 판은 얇은 유리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건너뛰어야 하는 곳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지점이었다. 정말 생사가 달린 게임이었다. 강화유리에 올라선 사람은 안도에 한숨을 내쉬지만, 올라선 순간 유리가 와장창 깨지면서 떨어지는 사람을 보면 섬뜩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냥 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네!”
이 말이 나도 모르게 뛰어나오는 순간이, 바로 이 순간이 아닐까 싶다. 내가 서 있는 징검다리가 거의 다 내려갔을 때쯤, 더는 올라오지 않을 것 같았던 징검다리가 그 모습을 드러낸 순간 말이다. “제발! 제발!”하며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바랐더니, 희망이 생긴 거다. 꺼졌다고 생각한 불꽃이 어느새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다. 정말 짜릿하고 기쁘다. 별거 아닐 수 있지만, 세상 모든 것을 가진 사람처럼 그리고 세상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환성을 지르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희망을 발견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고개를 숙이면 새로운 문을 발견하지 못한다.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고개를 푹 숙이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신은 한쪽 문을 닫으면 다른 문을 열어주신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내가 바라는 한쪽 문이 닫힌 것에 실망하고 고개를 숙이면, 그 옆에 열린 다른 문을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다른 희망을 살리지 못하고 닫힌 문 앞에 주저앉는다. 내가 원하는 것이 나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지금 당장은 아쉽지만, 오히려 더 좋은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희망을 품고, ‘다른 이유가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담대하게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희망에 문이 열리고 불꽃이 되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