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받은 하나에 고마움을 표현할 때, 계속 이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
사람의 욕심에 대해 명확하게 표현한 말이 있다.
“아홉을 가진 사람이, 하나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는다.”라는 말이다. 아홉이라는 대부분을 가지고 있지만, 그에 만족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지지 않은 하나를 욕심내서, 그 하나를 가져와 열을 채우려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놀부 심보라는 말이 딱 떠올랐다. 동생에게 밥 한 톨도 주기 아까워하는 모습 말이다. 사람의 욕심은 절대 채워지지 않는다는 말이 떠오른다.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만족할 줄 모르면 절대 욕심을 멈추기 어렵다. 욕망으로 치닫게 된다.
욕망의 끝을 알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에스키모인들이 늑대 사냥을 하는 이야기다. 에스키모인들은 늑대를 잡기 위해 늑대를 쫓아다니지 않는다. 얼린 칼에 동물의 피를 묻혀 칼날이 위로 오게 하여 바닥에 꽂아놓는다. 아마도 얼음 바닥이겠다. 그러면 피 냄새를 맡고 온 늑대가 슬그머니 나타나서 칼을 핥는다. 그 칼에 자신의 혀가 베여 피가 나는데, 흥분한 늑대는 자신의 피인지 인지하지 못한다. 흥분해서 칼을 핥던 늑대는 결국 과다출혈로 쓰러진다. 그렇게 쓰러진 늑대를 어깨에 둘러업고 가면 사냥 끝이다. 그만큼 욕망은 자기가 죽는지도 모르게 만드는 무서운 놈이다.
만족하지 못해 멈추지 못한 욕심에 끝인 욕망.
욕망만큼 무서운 것이 또 있다. 감사하지 못하는 마음이다.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에는 감사한 마음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하나를 받으면 그 하나에 감사한 마음보다 ‘하나밖에 안 주나?’라는 마음을 갖는다. 가끔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 어떤가? 다시는 주고 싶지 않게 된다. 괜히 줬다는 생각에 후회가 될 때도 있다. 반대로 별거 아닌 것을 줬는데, 격하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어떤가? 오히려 더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다음에 기회가 되면 가장 먼저 챙겨줘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감사한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
나에게 도움을 준 사람에 대한 마음의 표현 말이다. 그 표현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 앞서 언급했듯이,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은, 더 주지 못해 미안해한다. 자기가 해준 것에 비해 더 많은 인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가지지 못한 아홉을 바라보며 불평하기보다, 내가 받은 하나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표현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겠는가? 하나밖에 주지 못하신 분이 다음에는 더 챙겨주시지 않을까?
내가 더 받지 못하는 건, 어쩌면 내가 자초한 것일 수도 있다.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을 가득 안은 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 때문일 수 있다는 말이다. 주변을 봐도 그렇지 않은가? 작은 것 하나에도 불만을 터트리고 씩씩대면서 다니는 사람이 좋아 보이는가?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 좋은 것이 있어도 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주고도 좋은 소리를 못 들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좋은 소리 듣자고 주는 건 아니지만, 사람이 그렇지 않은가? 서로의 좋은 교감이 있어야 관계도 지속할 수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냥, 함께 있기 부담스럽다.
감사한 마음은 또 다른 효과가 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다. 용기일 수도 있겠다.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피게 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이유를 발견하게 되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원하는 방향이 아니더라도, 그게 결국 나를 위한 방향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다음은? 당연히 감사할 일이 더 많이 생기게 된다. 아! 감사할 일이라기보다 모든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이 생긴다는 게 더 맞겠다. 그런 눈과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우린 행복하기로 다짐할 수 있고 그렇게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