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올라오는 불편함과 불평을 은총과 감사의 마음으로 되돌려 주는 마음 이동
사람의 감정은 상대적이다.
매우 지극히, 상대적이다. 최근 기온이 떨어졌는데, 체감 온도도 그렇다. 겨울에는 영상 0도만 돼도 따뜻하다고 느끼지만, 최근 영상 7도 정도에도 추위를 느낀다. 같은 결과지만 반응이 다른 것도 사람이다. 그때의 감정에 따라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헷갈릴 때가 종종 있다. 좋았던 기억으로 같은 결과를 이야기했는데, 싸늘한 반응을 보이는 상대방과 마주할 때가 그렇다. 똑 부러지게 이유를 설명해 주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는다. 어쩌면 그러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사안을, 감정에 기대서 설명할 순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 이런 모습을 종종 본다.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할 사항을, 감정으로 설명한다. 마치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앞뒤가 안 맞는다. 그리고 계속 말이 바뀐다.
내 앞의 상황도 그렇다.
상대적으로 느낀다. 배가 몹시 고플 때는, 밥에 김치만 있어도 감사하게 그리고 맛있게 먹는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반찬 투정을 한다. 반찬 투정을 얘기하니, 한 영화의 대사가 생각난다. 형사로 기억되는데, 형사다운 반찬 투정이었다. “왜 살인사건 하나 없냐?” 나물과 김치 등으로만 구성된 밥상을 그렇게 표현했다. 고기가 없다는 투정이다. 만약 이 형사도 종일 굶으면서 정신없이 보낸 하루의 끝이라면, 흰쌀밥에 김치만으로도 감사하게 먹었으리라 생각된다. 같은 상황이지만 내 상태에 따라 마음이 달라진다.
내 앞의 상황은 내가 어찌할 수 있을까?
그러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내 앞의 상황은, 나도 알지 못한 순간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를 악물고 노력했지만, 물거품이 될 때가 있다. 허무하고 비관적이다. 억울하기도 하다. 내 인생만 꼬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느꼈던 내 인생에 한 장면이 떠오른다. 한 15년 전쯤, 매일 야근과 주말 출장으로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졌을 때였다. 하루는 버스에 머리를 기대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맥줏집 마당이 보였고, 파라솔이 여러 개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삼삼오오 모여, 마시고 먹으며 행복한 표정으로 떠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럴 수 있는 시간이 부러웠다.
그럼 내 앞의 상황은 그냥 어찌할 수 없을까?
아프면 아픈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원망하고 한탄하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야 할까? 잠깐은 그럴 수 있다. 그렇게 내지르고 싶을 때 내지르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하는 건 곤란하다. 자기 영혼을 갉아먹게 된다. 스트레스 쌓일 때 어쩌다 하는 과도한 음주는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거의 매일 그렇게 한다면 어떨까? 몸도 마음도 망가진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시점을 옮기는 거다. 내가 현재 있는 시점이 아니라, 지금보다 더 힘들고 어려웠던 시점으로 내 생각을 이동시키는 거다.
집 없이 떠돌았던 시절이 있었다.
월세도 전세도 아닌,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을 아이들과 함께 떠돌아다녔다. 그러다 은행 대출과 회사의 도움을 받아 전세를 얻게 되었다. 전셋값보다 빚이 더 많았다. 그래도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행복했다. 시간이 지나고, 2년마다 이사해야 한다는 게 짜증이 났다. 전세 운이 없는 건지, 옮기는 집마다 연장이 안 됐다.
어떻게든 집을 마련하자 다짐했다.
몇 년이 지나고, 다시 은행과 친구 그리고 회사의 도움을 받아, 집을 마련했다. 전세와 마찬가지로 집값보다 빚이 많았다. 그래도 내 의지로 옮기고 싶을 때 옮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감사하는 마음도 조금씩 커졌을까? 그랬으면 참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게 사실이다. 얻었다는 감사의 마음은 잠시, 그 상황에 맞는(?) 불편함이 올라왔다. 그렇게 좋아지는 상황에 맞게 불편함도 함께 달라졌다. 그러던 순간, 문득 집이 없던 시절로 내 시점을 옮겨봤다.
부끄러움에 숨고 싶은 심정이 올라왔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는데, 불평? 너무 부끄러웠다. 그리고 너무 죄송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 마음에 불편함이나 불평이 올라올 때, 지금보다 더한 시점으로 나를 옮기자. 그리고 그 시점에서 나를 바라보자. 그러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다. 그렇게 나를 다독여가며 하루하루 나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미움으로 내 마음에 들어선 사람도,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분명 고마웠던 시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점을 옮겨보면, 모든 것이 은총이고 모든 것이 감사할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