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열매를 맺기 위해, 뿌리고 심어야 할 내 마음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어떤 일을 작게 시작할 때 각오를 다지며 하는 말이다. ‘개역 성경’에 사용된 표현을 빌려서 한, 문장이다. 새로 개업한 가계나 사무실을 방문하면, 이 문장이 크게 걸려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 말마디는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는, 거의 가 작다. 앞서 말한 표현으로 하면, 미약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 갓 태어난 아이가, 뛰어다닐 수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스타트업’이라 불리는 회사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말 그대로 이제 막 시작한 회사니, 대체로 규모가 작다. 그래서 사업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비롯한 여러 부분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많이 있다. 이 제도를 활용해서 자리를 잡고, 나아가 큰 회사를 만들라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제도다. 작게 시작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큰 규모의 회사로 성장하는 회사도 많이 있다. 대기업이라 불리는 지금 회사들도, 처음에는 구멍가게로 시작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그걸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게 시작해서 크게 키우는 건 회사만이 아니다.
많은 것이 그렇다. 마음도 그렇다. 별거 아닌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내 마음에 ‘톡’하고 떨어진다. 그러면 그 한 방울이 온 마음에 퍼져나간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끝까지 퍼지는 물결처럼 말이다. 작은 물결이 점점 퍼져가면서 머릿속에는 좋지 않은 기억이 소환되고 좋지 않은 상상을 지어내기 시작한다. 작은 물결은 점점 속도를 내면서 커다란 물결로 변화시킨다. 마음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처럼 변해가고, 마음에서 시작된 부대낌은 마음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퍼진다. 그렇게 몸이 아파지기 시작한다. 마음에 병이 육체의 병으로 옮겨진다. 모든 육체의 병이 마음에서 온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내가 떠올리는 부정적인 경험의 소환과 상상은, 육체의 병을 더 악화시킬 수는 있다.
“선한 삶은 그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분명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얼마 전에 읽은 <세상을 읽는 눈, 지혜> 초반에 나오는 문장이다. 과연 어떤 결과일까? 생각해 봤다. 갑자기 주변 환경이 바뀌는 것일까? 아니다. 그럴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말인가? 선한 삶이라 했으니, 그 결과는 분명 좋은 결과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어떤 결과’를 이 단어로 바꿔봤다. ‘행복’이다. 행복이라는 단어로 변환해서 표현해 보니, 제법 자연스럽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하나가 더해진다. 행복에 정의가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사람마다 그 해석이 다를 수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이렇다.
자기에게 벌어진 일에, 참 이유를 찾는 사람이다.
참 이유는, “다 이유가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그 이유를 찾는 사람이다. 어떤 이유? 밝은 이유다. 밝은 이유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나에게 필요한 것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마음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라는 기준으로 바라보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그리고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별로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기준으로 바라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 그래서?”라며, 깊은 뜻에 감탄하게 될 때도 있다. ‘새옹지마’라는 고사 성어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행복의 시작도 미약하다.
내 작은 마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내 작은 마음이 어느 방향으로 향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매우 달라진다. 두 선이 처음에는 평행을 이루지만, 1도의 미세한 각도 차이가, 나중에는 매우 크게 벌어지는 것과 같다. 어디로 향하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그 길에서 내가 마주하게 될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지금 내 마음이 어떤 방향으로 향해야 할지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