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하지 못한 내 생각을 알아차리고, 나를 좀 더 명확하게 알아가는 과정
다수결의 가장 큰 허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다수가 선택한 결정이, 정답이라고 믿는 거다. 다수결은 공동체가 어떤 결정을 하는데 취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다수결로 선택한 많은 결정이, 다 옳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따라서 다수결의 선택은, 제일 나은 방법이 될지는 몰라도, 정답이 될 순 없다. 하지만 우리는 다수결로 결정된 것을 무의식적으로 정답이라 생각한다. “정답!”이라고 외치지는 않더라도 생각이 그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렇게 소수의 의견은 가려지고, 심지어 훼손되기도 한다. 다른 의견을 틀린 의견으로 만드는 거다.
다른 의견을 틀린 의견으로 만드는 건, 대부분 다수 혹은 강자다.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것을, 다른 의견으로 존중하지 않고 틀린 의견으로 배척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생각과 같은 사람을 많이 모으려고 한다. 그래야 힘이 세지고 자기 생각이 옳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믿는다. 이런 분위기의 공동체가 과연 건강한 공동체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 절대 건강한 공동체가 아니다.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한다. 건강한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수용하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소수의견을 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약자이다. 소수의견을 내는 사람이 약자라고 말하는 것보다, 약자이기 때문에 소수의견을 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게 더 맞겠다. 강자의 이익을 위해 약자가 희생을 강요받기도 한다. 그 강요를 뿌리치려는 방법으로 의견을 내는 거다. 원래 그렇다는 말을 싫어하는 사람도 소수의견을 낸다. 모든 규정에는 이유가 있다. 원래 그런 건 없다. 규정이 만들어진 이유가 분명 있다. 다만 잊고 지낼 뿐이다. 필요 없는 규정은 없애야 하고 변경이 필요한 것은 변경해야 한다. 하지만 다수는, 원래 그래왔다는 말로 뭉갠다.
소수의견을 내는 사람은, 자기 생각이 명확한 사람이다.
약자지만 권리를 찾고 싶은 사람이 그렇고, 환경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렇다. 일부러 다수 의견에 저항하고 소수의견을 내는 것이 아니다. 자기 생각대로 의견을 냈는데, 소수에 속해 있을 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자기 생각이 명확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말이 된다. 어쩌면 생각은 있지만, 여러 사정상 의견을 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안타까운 부분이다. 자기 생각을 다 표현하면서 살 순 없지만, 중요한 문제에 대해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참 안타까운 일이다.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할 수 없다는 것은 참 아픈 일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표현해야 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친 것처럼, 어디선가 외쳐야 한다. 그래야 산다. 마음에 쌓이면 숙성이 돼서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독이 된다. 쌓이고 쌓인 독이 결국 화병이 되는 거다. 그러니 표현해야 한다. 누가 듣든 듣지 않든 표현해야 한다. 표현하는 건 내가 하는 것이지 타인이 해줄 수 없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순 있지만, 물을 먹일 순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내가 직접 물을 마셔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글쓰기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여과 없이 그냥 쭉 써 내려가는 거다. 그렇게 써 내려간 글을 다시 읽으면, 인지하지 못한 내 생각을 발견하기도 한다. 내 생각을 내가 다 아는 게 아니다. 잠재의식 속에 깊이 가라앉아 있는 생각은 나도 알지 못한다. 그 생각을 발견하는 좋은 방법이 바로 글쓰기다. 기회가 되면 이 부분에 관한 책을 집필하려고 한다. 아이디어와 간단한 기획은 마쳤는데, 마음잡고 한 번 정리해 볼까 한다. 그렇게 내가 받은 도움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