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4. 지혜

by 청리성 김작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받아들이고 의미를 찾는 것

“왜 나한테만?”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아 보이는데 나만 괜찮지 않게 보일 때, 우린 이렇게 한탄한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났냐고 말이다. 나 역시, 지금보다 더 힘들었던 시절,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다른 사람들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여유롭게 사는 듯한데, 나는 주말에도 출장으로 쉴 틈 없이 살았기 때문이다. 더운 여름날, 파라솔에서 삼삼오오 모여 맥주잔을 나누는 장면이 그렇게 부러웠다. 주변 사람들은 집 걱정 없이 그냥 사는 듯한데, 나는 가정을 꾸리고 집 없이 8년 정도를, 본가와 처가로 떠돌아다녔다. 가까스로 전세를 얻어 이제 됐다 싶었는데, 재계약에 운이 없어 2년마다 매번 이사했다. 심지어 어떤 때는 바로 옆 동으로 가기도 했다.

한탄했던 이런저런 일들이 떠오른다.

하나둘 나열하다 보니 잊고 지냈던 일들까지 떠오른다. 역시 사람의 생각은, 자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하다. 그래서 같은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다양한 활동으로 마음을 챙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어쩌면 이런 활동의 궁극적인 목적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도착하고 싶은 마음에 닿기 위해, 생각의 길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말이다. 사람은 행복하길 원하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마음에 평화가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다.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한탄을 부른다.

나도 그렇고 주변 사람을 봐도 그렇다. “왜 나한테만?”이라며 한탄하는 마음을 들춰보면, 그 아래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라는 의문이 보인다. 사람들이 상식으로 생각하는 ‘인과응보’를 바탕으로 한 생각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배워왔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고.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정말 착하고 열심히 산 사람이 고생하거나 일찍 죽음을 맞이한다.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사람이, 등 따시고 배부르게 오래오래 잘 사는 걸 본다. 착하고 약한 사람은 불행에 가까워 보이고, 악하고 강한 사람은 행복에 가까워 보인다.


혼란스럽다.

이런 모습을 보면 혼란스럽다. 그렇게 안 배웠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과 현실의 괴리에서, 어느 쪽이 맞는 것인지 헷갈린다. 그렇게 한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그 혼란의 무게를 더한다. 진짜 무엇이 맞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기 어렵다. 사실 나도 답을 모른다. 다만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조금은 깨달은 것이 있다. 구약성경 중에 <욥기>라는 부분이 있다. ‘지혜 문학’ 중 하나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하느님을 섬긴 사람이었는데, 악마가 하느님께, 이유 없이 그럴 리가 있냐며 물었다.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니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악마는 말한다.

욥을 치면 분명 하느님을 저주할 것이라고 말이다. 하느님은 악마에게 욥의 소유를 넘기신다. 그렇게 욥은 시험을 당한다. 자식을 모두 죽이고 재산을 빼앗는다. 그래도 넘어지지 않는 욥의 몸에 직접적인 고통을 주신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는 하느님을 저주하라고 하지만, 욥은 오히려 아내를 다그친다.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좋은 것을 받는다면, 나쁜 것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소?” (욥 2,10) 이런 욥에게 친구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인과응보를 언급하며 욥에게, 자신이 지은 죄를 찾아보라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럴 리 없다고 말이다. 이런 모든 고통을 받아들이는 욥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내 생각의 결론을 잘 설명해 주는 책 구절이 있어 소개한다.

<세상을 읽는 눈, 지혜>라는 책인데, 성경의 지혜 문학이라 말하는 5가지(잠언, 욥기, 코헬렛, 집회서, 지혜서) 중, 욥기에 관한 설명이다. “욥기는 인간의 고통, 특히 무죄한 인간의 고통은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그것은 하느님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을 깨달은 욥은 자신의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고통을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 고통이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 할 때, 혼란이 온다. 인간의 고통은 이해의 범주가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찾는 노력이 더 필요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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