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게 피해를 보지 않도록, 신경을 써서 결정해야 할 선택
“정답은 없다.”
사람들이 서로 얽혀 살아가며 일어나는 일에 관해 이런저런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하나를 무조건, “옳다.” 혹은 “그르다.”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 따져봐야 하는 측면과 연관된 사람의 처지가 다양하다. 무엇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발생했는지, 그렇게밖에 할 수는 없는지 등을 여러모로 살펴보면, 각각에 이유가 있다. 이 사람의 말이 맞기도 하고 저 사람의 말이 맞기도 한다. 이럴 때가 간혹 있다. 상반된 의견인데 각각의 처지에서 하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질 때 말이다. 그래서 참 어렵다.
<송와잡설>에 나온, 황희 정승의 유명한 일화를 봐도 그렇다.
황희 정승의 여종 두 사람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다. 한 여종이 황희 정승에게 사연을 전했다. 황희 정승은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네 말이 옳다.” 그러자 다른 여종이 자기도 질세라, 입장을 이야기했다. 황희 정승은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네 말도 옳다.” 옆에서 지켜보던 조카가 답답했는지 한마디 거들며 물었다. “한쪽이 옳으면 다른 한쪽은 그른데, 다 옳다고 하면 어찌하십니까?” 그러자 황희 정승은 이렇게 대답했다. “네 말 또한 역시 옳다.” 매우 우유부단하게 보이는 답이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든,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는다.
대체적으로는 그렇다.
쉽게 판단하면 안 된다. 하지만 판단하고 목소리를 내야 할 때도 있다.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에게는 득이 되지만, 누군가는 피해를 볼 때가 그렇다. 그것이 정당한 것이라면 현실로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잘못된 판단으로, 득이 되지 말아야 하는 사람이 득을 얻을 때가 있다. 이것 또한, 그럴 수 있다고 여기고 넘어갈 순 있다. 하지만 최소한, 피해를 보지 않아야 하는 사람이, 피해를 보는 건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그렇게 만든 사람이, 그래도 되는 줄 알기 때문이다.
지금은 내가 피해를 보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그 피해가 언젠가 나에게 올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억울하게 피해를 본 사람이나 그 가족이, 관련된 부분에 대해 알리려고 노력한다. 어떻게든 재발 방지를 위해 힘쓰는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내 아픔도 아픔이지만, 이 아픔이 더는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고개가 숙어진다.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도 함께 더해서 말이다.
나에게 이로운 것이, 누군가에게 해로운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몰랐다면 이제부터 알면 되고, 알고도 그랬다면 이젠 그만 멈춰야 한다. 더는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얻는 사람은 그 이로움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해로운 것을 떠안는 사람은, 그 해로움으로 인생이 무너질 수도 있다. 타인의 인생 전부를, 자신의 며칠로 여겨서는 안 된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묻히는 거다. 그 사실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묻히고, 그 상처와 아픔은 관련된 사람들 가슴속에 깊이 묻히는 거다. 나에게 이로운 것이, 누군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나 역시, 혹시 그런 일이 없는지 돌아보고, 주의하는 것도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