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불편한 마음으로 죄짓게 하는 사람이 감당해야 할 더 큰 책임
매월 첫째 주 목요일 저녁, 20:00 미사 후에는 ‘성 시간(聖時間)’이 진행된다.
여러 일정으로 평일 미사 참례가 어렵지만, 이날만큼은 어떻게든 참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행히 지난달과 이번 달 모두 참례했다. 하고자 하면 방법을 찾는다는 말을 다시금 깨닫고 있다. 정말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마음만 먹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조절할 수 있으니 말이다. 지난 목요일은 퇴근 시간 전에 외부 미팅이 있어서, 미팅을 마치고 여유 있게 퇴근할 수 있었다. 뭐든 빠듯하게 움직이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여유 있게 움직일 때, 마음에 여유도 생긴다. 마음에 여유는, 마음에 떠다니는 잡생각을 가라앉혀준다. 이렇게 차분하게 가라앉은 마음일 때, 조금 더 깊이 묵상도 할 수 있게 된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마음으로 성당을 찾았다.
미사 참례를 마치고 ‘성 시간’이 진행됐는데, 묵상 시간에 이런 묵상이 됐다. 여기서 됐다는 말은, 내 의지가 아닌, 나도 모르게 떠오른 생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럴 때가 가끔 있다. 내가 생각한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어떤 상황이나 문장 혹은 기도가 떠오른다. 그럴 때면 소름이 돋는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왜 그 기도가 됐는지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곧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 필요한 기도라는 것을 말이다.
“누군가 죄를 짓도록 원인을 제공한 것이 있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뜨끔했다. 이런 기도가 떠오른 것이 처음이기도 했고, 최근 들었던 이야기와 연결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기도 내용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누군가 나를 모함한다고 하자. 그러면 보통은 모함한 사람을 원망한다. 기도한다면,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한다. 마음이 그렇게 따르진 않더라도,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기도한다. 기도는 하지만, 허한 마음이 떠나진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 떠올랐던 기도는 전혀 달랐다. 누군가 나를 모함했다면, 내가 그 원인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있다. 원인을 제공한 나로 인해, 그 사람이 모함이라는 죄를 짓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럴 가능성에 대해 무감각했는데, 느낌이 확 들었다. 모함하거나 악의를 품고 행하는 사람이 가장 잘못이지만, 그렇게 만든 것 또한 피할 수 없는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그렇게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원인 제공을 한 것이 있다면, 용서를 빌고 싶다. 단, 그렇다고 나에게 던져지는 누군가의 죄가, 다 내 잘못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하고 싶다. 모든 죄가 다 내 잘못이라 여긴다면, 과연 온전하게 살아갈 사람이 있을까? 없을 거다. 자괴감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다. 아무리 “내 탓이요!”라고 외치더라도, 분명 억울한 상황은 있다.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몰고 가는 사람이 어디나 있다.
이런 사람이 남을 죄짓게 하는 사람이 아닐까?
있지도 않은 말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타인을 모함하는 사람.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외부의 영향으로 돌리는 사람. 책임을 져야 함에도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 등등.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아니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남을 이용하는 사람을 여럿 봤다. 근거 없는 이유를 갖다 붙인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말한다. 모든 잘못의 원인을 타인에게 전가한다.
타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에 말해주고 싶다.
당장은 모면할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사실은 분명하게 밝혀진다고 말이다. 사실에 대한 대가는 본인이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져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자기가 좀 편해지자고 누군가의 등에 짐을 올려놨다면, 그 짐은 몇 배의 이자가 얻어져 본인에게 돌아온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짐을 얻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전래 동화에 나오는, 어리석은 당나귀처럼 된다.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무거운 소금을 싣고 가던 당나귀가 실수로 개울에 빠졌는데, 소금이 녹아 가벼워졌다. 이를 계기로, 솜을 싣고 가던 당나귀는 꾀를 부렸다. 무겁진 않았지만, 더 가볍게 가고 싶은 마음에 일부로 연못에 빠졌다. 하지만 오히려 짐이 더 무거워졌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연못에 빠졌지만, 무게는 더 늘어났다. 그렇게 당나귀는 더 무거운 짐을 지고 돌아가야 했다. 타인에게 죄짓게 하는 사람은 이렇게 된다. 꾀를 부리다 오히려 더 무거운 짐을 지게 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