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8. 기준

by 청리성 김작가
비교해야 할 대상이 다르면, 다른 기준으로 살펴야 혼란이 발생하는 않는 중심


작년 말, 생애 처음으로 결혼식 축사를 했다.

이전 직장에서 만난 후배의 결혼식에서였다. 올봄 이 친구한테 전화가 왔었다. 같이 일하지 않은 지는 10년도 더 됐지만, 가끔 연락도 하고 얼굴도 보면서 지내고 있었으니, 전화가 생뚱맞진 않았다. 같이 일할 때도 그랬지만, 이후에도 참 잘 따르는 친구다. 그래서 나도 좋아하는 친구다. 잘 지내냐는 안부 인사와 함께 수줍은 듯,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 친구의 입에서는 나오지 않을 것 같던 말이었기에, 진심에 마음을 담아 축하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미리 연락을 준 것도 고마웠다. 결혼 일정이 잡히고 바로 연락을 준 듯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부탁 하나를 했다.

주례였다.

잉? 주례? 내 나이에? 좀 당황스러웠다. 생각지도 못했다. 이 친구가 아니더라도 그랬을 거다. 아직은 주례가 어울릴 나이는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뿌듯한 마음도 함께 올라왔다. 그래도 그렇게 나쁘게 살고 있진 않다는 방증이었기 때문이다. 나쁘진 않지만 난감하다는 말을 전하다가, 내가 이렇게 제안했다. “주례는 좀 오버 같고, 대신 축사는 어때? 주례사 같은 축사 말이야. 내가 어떤 역할이라도 해줬으면 한다면 그것도 괜찮을 듯한데.” 이 친구는 그렇게라도 좋다며, 고맙다는 말을 연신 전했다. 사람들은 대게 이 친구를 보며, 철이 덜 들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바라보는 이 친구는, 순수한 마음을 가졌지만, 그저 표현이 서툰 사람이다. 그 표현이 가끔 예상을 뛰어넘어 당황스러울 때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암튼 악의가 없는 착한 친구라는 것만은 사실이다.

축사는 입장하는 라인 중앙에서 진행되었다.

결혼식이 시작하는 시간 바로 전에 알게 됐다. 신랑과 신부를 마주 보며 섰는데, 하객의 절반 이상은 내 뒤에 있는 위치였다. 절반의 하객은 내가 뒷모습을 바라봐야 하는, 아주 애매한 위치였다는 말이다. 나는 사회자가 있는 곳에서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계획해둔 설정이 있었는데, 틀어진 거다. 처음 서론은 하객을 바라보면, 내 소개와 함께 신랑과의 인연 등을 얘기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본론은 축사이니만큼, 신랑과 신부를 바라보며 할 계획이었다. 중앙에 서서 신랑과의 인연만 간단하게 얘기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메시지를 요약하면 이렇다.


사람인(人)에 빗대어 설명했다.

사람인은 사람이 서로 기대고 있는 형상이라 알고 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기대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언젠가 이렇게 질문해 봤다. “서로 기대고만 있으면 조금만 틀어져도 다 넘어지는 거 아니야?” 손가락으로 사람인의 모양을 만들고 살짝만 비틀어도 두 손가락이 서로 엇갈리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온전한 사람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각자가 먼저, 온전히 홀로 설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 기댈 때, 안정적으로 기댈 수 있다. 이렇게 온전히 홀로 서야 하는 청년으로 사는 삶과 사람인을 만드는 부부로서의 삶에 필요한 것을 이야기해 주고 싶다.

온전히 홀로 서는데, 꼭 기억해야 할 말이 있다.

“인생은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이것을 기억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힘듦과 어려움이 내 앞에 있을 때,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야!”라며 불평하기보다, “이런 일이 생긴 이유가 뭘까?”라며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찾으라는 말이다. 그러면 깨닫게 된다. 내 앞에 그런 일들이 일어난 이유를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계획대로 된 것이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그 이유를 시간이 흐르고 깨닫게 된다. 그래서 감사하다. 더 좋은 길을 걷게 되었기 때문이다.


부부로서의 삶에서 강조한 건 이렇다.

싸우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싸운 다음 해야 할 약속을 정하고 지키라고 말이다. 결혼 전에는 매력으로 느꼈던 부분이 결혼 후에는 단점으로 보인다. 왜 그럴까? 상대방의 행동은 달라진 게 없는데 왜 그렇게 느껴질까?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결혼 전과 후의 마음은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결혼 생활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 결혼식 날이라는 말이 그냥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니 다툼이 일어나지 않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중요한 건 서로 약속을 정하고 지키는 거다.


세 가지 약속을 따라 하게 했다.

첫째, 싸우더라도 절대 그날을 넘기지 않는다. 둘째, 싸우더라도 절대 각방을 쓰지 않는다. 셋째, 누군가 손을 내밀면 일단 잡아준다. 이 세 가지만 지키면, 싸우긴 하더라도, 큰 감정싸움으로 번지진 않는다. 사소한 싸움이 큰 싸움이 되는 이유가 뭔가? 한 치도 양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 이틀을 보낸다. 감정의 골은 더 깊어진다. 누군가 손을 내밀어도 잡아주지 않는다. 그러면 걷잡을 수 없는, 큰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그걸 예방하는 방법은, 그날을 넘기지 않는 것이고, 누군가 먼저 사과를 하면 일단 받아들이고 대화를 시작하는 거다. 그러면 싸움이 오히려, 서로를 이해하는 수단이 된다.

결혼 이전과 이후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한동안 동거가 유행(?)일 때가 있었다. 미리 살면서 결혼 생활을 체험(?) 한다는 의미에서는, 좋은 아이디어처럼 보인다. 시행착오를 줄이자는 의도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한 부분이 있다. 책임이다. 동거와 결혼은 한 집에 산다는 것은 같다. 하지만 책임에 대한 부분은 전혀 다르다. 동거는 안 맞으면, 서로 헤어지면 그만이다. 물론 쉽게 헤어질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서로 구속하는 부분이나 명확한 약속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결혼은 그렇지 않다. 안 맞는다고 바로 헤어질 수 없다.


간단한 예를 들어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동거할 때는 이해의 폭이 넓다. 치약을 중간부터 짜도 뭐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혼해도 그럴까? 아니다. 뭐라 한다. 그러면 상대방은 동거할 때는 뭐라 하지 않으면서, 결혼하니까 왜 뭐라고 하냐고 따진다. 일리 있는 말이다. 더 들어가면, 변했다는 말을 할 수도 있다. 왜 그럴까? 동거할 때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결혼해서는 그렇게 안 된다. 평생 함께 살아야 한다는 마음 때문이다. 동거할 때는 ‘아니면 말고’라는 생각이 더 크기 때문에, 굳이 분란을 일으키려 하지 않는다. 사실 나는 동거를 하지 않아서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아주 많이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한다.


기준이 다른데 같은 마음으로 바라볼 때가 있다.

혼란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다른데 같은 기준을 대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해가 되지 않으니 마음도 불편해진다. 동거와 결혼을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가 난감한 상황을 맞는 것처럼 말이다. 무언가를 비교할 때 꼭 확인해야 한다. 내가 비교하려는 것을 같은 기준으로 바라봐야 할지 살펴야 한다. 혼란에 빠져 불편한 마음으로 살지 않기 위해서는,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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