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명확한 이유로, 벗어나지 않아야 그 이유를 증명할 수 있는 것
존재 이유가 없는 것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없다. 어떤 위치나 자리에 있는 이유가 있고, 존재하는 것도 이유가 있다. 사람은, 그 사람이 현재 머무는 곳이나 속해 있는 공동체에 필요한, 존재 이유가 있다. 물건도 마찬가지다. 책상 위를 살펴보면 자주 사용하지는 않지만, 쓰임이 있는 물건이 필요한 곳에 있기 마련이다. 아! 잘 정돈된 책상이라면 말이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이 있는데, 아무리 쓸모없다고 생각한 것도, 다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듯 존재 이유가 없는 것은 없다.
존재 이유는, 필요 유무로만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필요가 있고 없고의 여부만으로 존재 이유 전부를 설명하진 못한다는 말이다. 그럼 무엇이 더 필요할까? “존재하는 본질에 충실한가?” 이 물음에 관한 대답이다. 단순히 위치나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위치나 자리에 있는 존재 이유를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생각하고,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회사에서 부서의 장이라면, 그 위치에 필요한 역할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에 맞는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한다. 자리는 부서장이면서 하는 역할이, 프로젝트를 열심히 잘 수행하는 정도의 수준이라면 그 부서는 어떻겠는가? 시스템이 무너진다. 원활한 운영이 어렵게 된다는 말이다.
최근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봐도 그렇다.
그 위치와 자리에 있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 시스템인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시스템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시스템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이다. 왜냐면 그 안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없는 시스템이 있는가? 기계가 돌아가는 시스템도, 분명 사람의 역할이 있다. 따라서 시스템 안에 포함된 각 사람은, 그 위치와 자리에 있는 존재 이유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배는 강이나 바다 등 물에 있어야 하는데, 산으로 간다니 무슨 말인가? 배가 가야 할 목적지가 정해지면 그에 따라 노를 저어야 한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마음과 힘을 모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각자가 다른 생각을 한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노를 젓는다. 산에라도 가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 자리를 뱅뱅 맴돌기만 할 가능성도 크다. 자기주장만 해서는 배에 오른 본질을 잊게 된다. 속담처럼, 강이나 바다가 아니라 산으로 간다. 그러면서 산으로 간 정당성을 말한다. 우리는 이것을 변명으로 듣지만 말이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
이 질문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그래야 존재 이유를 잊지 않는다. 존재 이유를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하는 행동은, 폭탄이 될 수 있다. 막 걸어 다니기 시작하는 아이를 가리켜서, 움직이는 폭탄이라고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그 아이는 자기가 거기를 왜 가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발이 움직이는 대로 이동할 뿐이다. 그리고 손에 잡히는 대로 잡아당긴다. 그 손에 잡히는 게 무엇인지에 따라 피해의 크기가 달라진다. 아기는 그렇다고 해도, 성인이 그래서야 하겠는가? 아기처럼 거기로 갈지 몰랐고 그것을 잡아당길 줄 몰랐다고 하면, 과연 고개를 끄덕이며 바라봐 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