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당당함

by 청리성 김작가
내가 받은 만큼 언젠가 돌려줄 수 있다는 마음을 통해 얻게 되는 자부심

‘육하원칙’

글을 쓸 때 지켜야 할 원칙 중 하나다. 특히 기사문이나 보도문 등 어떤 사실을 명확하게 전달해야 할 때, 꼭 필요하다. 글을 읽는 사람이 자의적인 해석을 할 여지를 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왜일까? 감상문이나 자기 생각에 관해 쓴 글은, 사람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해야 한다. 느낌이나 생각이 다 같을 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을 전달해야 할 때는, 그러면 안 된다. 이는, 리더의 덕목 중 하나에도 해당한다. 어떤 지시를 내릴 때, 듣는 사람들이 그 해석을 제각기 한다면 어떻게 될까? 제대로 된 결과물을 낼 수 없다. 협업도 불가능하다. 오합지졸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리더가 잘못된 결과물에 대해 질책하면, 사람들한테 이런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어! 그런 의도였어요?”


육하원칙에 전부는 아니더라도, 몇 가지가 필요할 때가 있다.

아! 생각해 보면 꽤 많은 곳에 사용할 수 있겠다. 어쩌면 모든 대화의 수단에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잘만 사용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빠트리지 않아야 할 때가 있다. 거의 가, 이 부분을 지키지 않아 원하는 결과를 못 얻는다. 언제일까? 도움을 청할 때다. 도움을 청할 때는 반드시, ‘언제’와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를 포함해야 한다. 물론 ‘누가’와 ‘어디서’ 그리고 ‘왜’까지 포함하면 매우 좋다. 하지만 반드시 포함하지 않아도, 도움을 받는 데 큰 무리는 없다.


누군가가 도와달라고 말을 꺼낸다.

그러면 이렇게 묻게 된다. “뭘,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데?” 그런데 의외로,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변하는 사람이 적다. “어! 뭐 그냥, 알잖아? 알아서 해줘.” 뭘 알아서 해달라는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부탁하는 처지에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고 말하는 게 미안해서 인지, 정말 뭐가 필요한지 몰라서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아니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사정을 아니, 본인 입으로 말하기 멋쩍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럼 언제까지 해주면 되는데?” 대략 짐작하고, 이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변 역시, 알아서다.

이 상황에서 정말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가능성이 매우 낮다. 도움을 청하는 사람은 오른쪽 다리가 간지럽다는 의미로 말했는데, 듣는 사람이 왼쪽 다리로 이해했을 수 있다. 그러면 도움을 청한 사람도 도움을 준 사람도, 헛수고 한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필요한 ‘무엇을’이 다르면? 원하는 ‘어떻게’가 다르면? 필요한 시점인 ‘언제’가 다르면? 상상만 해도, 안타깝다. 내 일이 아니더라도 안타까운 마음은 마찬가지다. 간절함의 갈증을 해소하지 못한 사람의 마음을 알기에, 안타까운 마음은 쉬이 잊히지 않는다.


당당함과 뻔뻔함의 차이를 잘못 이해한 결과다.

명확하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당당함이다. 하지만 그것을 뻔뻔함으로 잘못 이해한다. 이것을 간절함이 덜해서라고 해석하고 싶진 않다. 제대로 된 도움을 받아보지 못해 그런 거라, 이해한다. 당당함을 뻔뻔함으로 인식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나도 언젠가, 도움을 줄 거라는 마음을 갖는 거다. 마냥 받는 게 아니라, 지금은 도움을 받지만 언젠가는 내가 꼭 도움을 줄 거라는 마음 말이다. 그러면 마음의 주름이 조금은 펴질 거다. 우리는 언젠가 누구한테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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