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7. 실행

by 청리성 김작가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꾸준한 행동을 통해 삶으로 녹여내는 마음


‘아는 것’과 ‘하는 것’은, 어떤 사이일까?

가장 가까운 것 같지만, 가장 먼 사이다. 알면 당연히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아는 것이 머리의 영역이라면, 하는 것은 몸의 영역이라 그럴까?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몸으로 옮기는 것이 참 어렵다. 故 김수환 추기경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70년이 걸렸다고 하셨다.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 이렇게 말씀하실 정도니, 머리에서 가슴으로 오는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지 가늠하기 어렵다. 가슴까지만 내려오면 손과 발로 가는 여정은 그리 어렵지 않은데 말이다.

자기 계발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반복하는 이유도 그렇다.

아는 내용이지만, 꾸준히 책을 읽고 강연을 들으면서 동기부여를 받는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게 하려는 노력이다. 그래야 손과 발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가슴으로 내려앉은 순간, 나도 모르게 손과 발이 움직일 때도 있다. 여기까지만 오면 안정권일까? 그러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다. 계속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반복해서 동기부여를 받으려고 하는 또 다른 이유다. 안정권으로 들어왔다고 생각이 들지만, 한순간에 무너진다. 그래서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모여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아름다운 구속이라는 노래 제목처럼, 스스로 족쇄를 채운다. 이 또한 책임감 혹은 배려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긴 하지만 말이다.


나에게도 있다.

머리에서 손과 발로 내려오지 않아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그것 말이다. 머리에서 내려오지 않는 게 이것뿐이겠냐 만은, 매일 해야지 하면서 못하고 있는 게 있다. 짧지만 강력한 아침 운동, 플랭크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와 묵상을 하고, 플랭크와 기타 간단한 근력운동을 10분~15분 정도 했었다. 그렇게 꾸준하게 루틴을 이어왔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2분을 넘기기 어려웠는데, 5분 가까이할 수 있을 정도까지 됐었다. 이렇게 꾸준히 하면 그 이상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간은 기록에 의미를 넘어선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코어 근육이 생기니, 일상적인 활동이나 다른 스포츠 활동에도 큰 도움이 됐다. 그걸 느꼈다. 그래서 귀찮고 하기 싫은 적도 있었지만, 짧게라도 했다. 맛을 봤으니 말이다.


어느 순간, 할 수 없는 핑계가 생기기 시작했다.

조금 늦게 일어나기도 하고, 숙취가 가시지 않아 도저히 할 수 없는 몸 상태가 반복됐다. 늦은 시간은 어쩔 수 없다고 하자. 숙취가 가시지 않은 몸 상태는, 정말 그랬을 수도 있지만, 하지 않아도 될 좋은 핑곗거리가 됐다. ‘이러다 오히려 몸 상할 수 있지!’ 잘 한 판단이라며, 내가 나를 다독였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니, 일주일이 훅 갔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마음에 다시 시작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다시 나를 다독이는(?) 여러 이유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신기한 걸 느꼈다.


‘어? 아직 되네?’

플랭크를 한참 하지 않았는데도. 절정기 때만큼은 아니지만, 비슷한 시간을 한 거다. 오랫동안 하지 않아, 2~3분도 버티기 힘들 거로 생각했는데 말이다. 물론 다른 건 있었다. 힘들다는 느낌, 그러니까 버틴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것과 코어 근육이 예전 같지 않은 느낌이다. 5분을 할 수 있는 것과 매일 5분을 하는 것의 차이를 느꼈다. 아는 것과 하는 것의 차이처럼 말이다.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아는 것은 어쩌다 할 수 있지만, 하는 것은 계속 그 힘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한두 번 선행을 베푸는 것과 계속해서 선행을 베푸는 사람의 차이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아는 사람을 넘어, 하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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