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9. 위로

by 청리성 김작가
죄에 함몰돼서 좌절하기보다, 은총의 힘을 믿고 의지할 때 얻는 선물


말은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시원하게 다가온다. 때로는 날카롭게 때로는 둥글둥글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 모습을 나열하기에는 끝이 없으니, 여기까지만. 말에는 재미있는 특징이 있다. 같은 모습으로 다가온다고 해서, 항상 같은 느낌을 받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따뜻함이 때로는 뜨거움으로, 시원함이 때로는 차가움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날카로운 말에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정신을 번쩍 뜨이게도 한다. 뼈 때린다는 표현이 있는데, 이런 느낌을 받을 때 사용한다. 둥글둥글한 말이 편안할 때도 있지만, 물린 느낌 혹은 겉치레 같은 느낌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그러니 말은, 사람과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잘 사용해야 한다. 내 의도와 다르게, 상대방이 반응을 보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가장 좋은 말은 뭘까?

시의적절한 말이 가장 좋은 말이 아닐까 싶다. 필요할 때 필요한 말은, 심한 갈증으로 허덕이고 있을 때 앞에 놓인 시원한 생맥주와 같다. 추위에 벌벌 떨고 있을 때, 누군가 건네는 따뜻한 커피와 같다. 내 마음을 잘 알아주니 너무 고맙다. 이런 느낌을 한 번이라도 전해준 사람은, 계속 좋게 바라보게 된다. 고마움에 대한 의미도 있지만, 다시 그런 느낌을 줄 거라는 기대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럼, 여러 느낌 중, 가장 기대하게 되는 말은 어떤 말일까?


위로를 주는 말이 아닐까 싶다.

위로를 주는 말은, 언제 어느 때 들어도 좋다. 괴로움과 슬픔에 빠져있을 때는 물론, 평상시에도 위로를 건네는 말은 참 좋다. 건네는 사람의 마음도 좋고, 받는 사람의 마음도 좋다. 위로를 나누는 시간과 공간 안에 있으면 따뜻해진다. 내가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함께 있다는 그 자체로 좋다. 위로를 주는 말은 귀로 들을 수도 있지만, 글로 읽을 수도 있다. 책을 보면서 위로를 받을 수 있고, 미디어에서 볼 수도 있다. 최근에 위로를 주는 한 문장을 발견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은총은 죄보다 더 강합니다. 은총은 어떠한 난관도 극복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준비하는 고해 성사> 중에서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 괴로움이 밀려온다.

모르고 했는데 후에 깨달을 수도 있고, 알았지만 여러 이유로 피하지 못한 현실을 자책한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시간 간격은 있지만, 결국 같은 죄를 범하게 된다. 이렇게 되는 이유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배려하셨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죄지을 기회를 피할 수도 있고, 그대로 빠질 수 있게 내버려 두신다는 말이다. 자유의지가 좋기는 하지만, 죄를 인지했을 때는 그 자유의지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계속 자책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말로 위로를 얻는다.

자유의지로 죄를 지을 순 있다.

하지만, 그것을 용서하고 감싸주시는 은총이 더 크다고 한다. 죄보다 강하다고 한다. 어떠한 난관도 극복한다고 한다. 그 안에 있는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고 한다.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씀인가! 아! 그렇다고 대놓고 죄를 지어도 된다고 해석하는 건 곤란하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자유의지로 통제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죄를 지었다는 죄책감에 빠져 절망하기보다, 그보다 더 큰 사랑을 믿으며 위로로 삼을 필요가 있다. 죄에 함몰되기보다, 그 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렇게 은총에 한 발 더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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