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메시지와 과정을 중하게 여기면, 중하게 돌아오는 부메랑
‘하인리히의 법칙’
미국의 한 여행 보험회사의 관리자였던 하인리히(Herbert W. Heinrich)라는 사람이 발견한 법칙이다. 7만 5,000건의 산업재해를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1 : 29 : 300 법칙을 주장했다. 큰 재해가 발생했을 때 그와 비슷한 작은 재해 혹은 다칠 비율을 역으로 살펴본 거다. 큰 재해가 발행했다면, 그전에 같은 원인으로 29번의 작은 재해가 발생했었고, 재난은 피했지만 같은 원인으로 다칠뻔한 사건이 300번은 있었을 거라고 말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문제 상황을 초기에 발견했다면, 신속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는 현실에서 이런 경험을 직간접적으로 하고 있다. 그래도 잘 바뀌지 않아서 문제긴 하지만 말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하인리히 법칙이 주는 메시지는 이렇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거다. “에이, 설마!”라고 넘겼다가 가슴을 쓸어내린 사람이라면, ‘설마’의 무서움을 잘 안다. 시험을 치러본 사람이라면 이런 경험 한 번쯤이 있지 않을까 싶다. 시험공부를 하는 데, 귀찮다는 생각이 머리끝까지 올라온다. 그렇게 내용을 제대로 안 보고, 페이지를 그냥 그냥 넘긴다. 그냥 시험 범위까지 봤다는데, 의의를 두는 거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설마 나오겠어?’ 하지만 그 문제를 시험지에서 만난다. 이번에는 소름이 쫙 하고 머리끝까지 올라온다. 무심코 넘겼던 그 짧은 시간이, 긴 후회로 되돌아온다. 부메랑처럼 말이다. 이런 건 차라리 한번 웃고 넘어갈 수 있다. 나중에 좋은 안줏거리로도 좋다.
사람의 목숨과 인생이 뒤바뀐 문제는 어떨까?
이야기가 달라진다. 누군가의 설마가 진짜 사람을 잡게 되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렇게 안타깝게 목숨을 잃거나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사건도, 그 안에 숨겨진 하인리히의 법칙이 존재한다. 건물이 붕괴하기 전에 금이 가는 모습이 보이거나 현장 관리인들의 문제를 제기했지만, 책임자들은 ‘설마’라는 눈가리개를 쓰고 모른 척했다. 큰 화재가 발생했을 때도, 위험요소가 다분하고 작은 사고들이 발생했지만, ‘설마’라는 눈가리개를 쓰고 그냥 넘겼다. 안일한 대처가 얼마나 끔찍한 참사로 이어지게 하는지는, 최근에 접한 일로도 잘 알고 있다.
‘설마’라는 눈가리개를 쓰는 이유가 뭘까?
욕심 때문이다. 더 갖고 싶은 욕심과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잃지 않으려는 욕심이다. 그 욕심에 눈이 멀면 ‘설마’라는 눈가리개가 쓰이고 그 농도는 점점 짙어진다. 시베리아에서 늑대 사냥을 할 때, 칼끝을 세워 얼음판에 꽂아놓는다고 한다. 거기에 동물에 피를 묻혀놓는데, 늑대가 그 피 냄새를 맡고 칼을 핥기 시작한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칼에 자기 혀가 베이면서 피는 점점 많아진다. 하지만 늑대는 자기 피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더 세게 핥는다. 혀가 마비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과다출혈로 늑대는 제풀에 쓰러진다. 잘못된 욕망은 자기 피를 쏟고 죽는 최후를 맞이한다는 것을 잘 알려준다.
또 다른 이유는 이렇다.
작은 메시지를 가볍게 여기기 때문이다. 마음이 깨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작은 메시지를 가볍게 여긴다. 본인들은 대범하다며 어깨를 치켜세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 대범하다고 표현할 순 없다. 오히려 작은 것을 세심하게 살피고 무겁게 여기는 모습이, 더 대범한 모습이라 말할 수 있다. 드라마에서 이런 얘기를 가끔 듣는다. “그렇게 작은 일에 연연해서 어떻게 큰일을 하려고 그래!” 이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을 테다. 앞서 말한, 대범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잊고 있는 게 있다.
모든 결과물에는, 작은 시작이 있다.
그 시작에 작지만 필요한 노력과 정성을 담는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쌓여서, 원하는 결과물로 나타나게 된다. 처음부터 결과물이 그냥 뚝 하고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작은 메시지를 가볍지 않고, 중(重) 하게 여겨야 한다. 중하게 여길 때, 작은 메시지가 큰 결과로 보답한다. 내가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나도 가볍게 여긴다. 내가 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나도 중하게 여긴다. 사람 관계의 법칙이다. 메시지도 마찬가지다. 내가 중하게 여겨야 중한 결과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