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3. 때

by 청리성 김작가
내가 의지로 그리고 노력한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알아야 할 그 시간에 오는 것


‘마지막 여행’

너무 거창한가? 아! 작년, 마지막 가족 여행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그렇다. 연말에 마지막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자주 다닌 것도 아니지만, 나름의 의미를 담은 여행이라 그런지 마음이 좀 달랐다. 첫째가 고3이 됐는데, 수능을 치를 때까지, 함께 여행은 어렵다고 하여 잡은 일정이다. 이번 여행의 콘셉트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다 해주는 거였다. 지금까지는 좀 가렸다. 필요 없다는 이유로 돈이 아깝다는 이유로,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것들을 자중시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름의 의미(?)를 담았기에, 이틀 동안 자유롭게 해주자며, 아내와 큰맘을 먹고 여행을 떠났다.


계획한 대로 잘 이루어졌다.

차가 그리 막히지도 않았고 온천도 생각보다 좋았다. 토요특전미사를 함께 참례하기로 계획했기에, 시간에 맞춰 이동했다. 청소년 청년 미사로 진행되었는데, 우리(?)가 원하는 미사였다. 오랜만에 가족 모두가 한자리 앉아 미사 참례를 하니 참 좋았다. 아내는 이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고 한다. 그래서 내년에는 한 달에 한 번, 가족 모두가 함께 미사 참례를 하자고 했다. 내년에 이 부분은 꼭 지켜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해본다. 저녁도 그렇고 다음 날 점심도 그렇고, 애써 찾은 건 아니지만 맛집을 만났다. 주메뉴는 물론 반찬도 맛있었다. 의미 있고 맛나고 재미있는 여행을 그렇게 보냈다.

점심을 먹고 논의를 했다.

첫째와 둘째가 저녁 일정이 있어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얘기했다. 점심을 먹은 근처에 독립기념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곳에 들렸다, 유명한 빵집을 마지막으로 들렀다가 올라가기로 했다. 독립기념관이라고 해서 독립운동에 관련된 내용만 전시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하루 날 잡고 와서 둘러봐야 할 만큼, 우리나라 역사 전체가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다 보고 가기에는 시간이 안 될 듯하여, 2관까지만 보고 서둘러 이동했다. 시간을 보니 빵집에서 잠시 머물렀다 올라가면 될듯했다.

빵집 입구에 들어섰다.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차들이 많았다. 주차를 위해 둘러보다 한 곳에 빈자리가 보여서 들어갔다. 하지만 장애인 주차구역이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 후진으로 천천히 그곳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오른쪽에서 묵직한 마찰음이 들렸다. 가만 보니 뒤에, 아니 옆에 내 차와 다른 차가 맞닿아 있었다. ‘아!’ 전혀 보지도 듣지도 못했는데, 차가 있었던 거다. 서둘러 내려서 일단 사과부터 했다. 내가 후진으로 가다가 부딪혔기 때문이다. 상대방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후진할 때 경적을 눌렀다고 했다. 내가 잠시 멈추자, 들은 것으로 알고 그 차는 빠져나가려 했던 거다. 하지만 나는 듣지 못했다. 내가 잠시 멈춘 이유는, 백미러로 봤을 때, 주차 구역 밖에서 차 한 대가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래저래 수습을 마쳤다.

보험사에서 오셔서 정리를 해주셨다. 그렇게 마무리하고 차에 올라 이동했다. 이틀 동안 너무 만족스러운 여행이라 생각했는데, 마지막 코스에서 사고가 났다. 보험 차량을 기다릴 때도 생각했고, 이동하면서도 생각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유를 붙이자면 한도 끝도 없다. 그래서 그분에 깊은 뜻을 찾았다. 내가 어떤 일이 생기면 하는 것처럼, ‘다 뜻이 있으시겠지! 그런데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다.


내가 할 수 있는 생각은 이랬다.

더 큰 사고를 막아주시기 위해서라고. 주차장에서 미세한 접촉 사고가 나지 않았으면, 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그렇게 믿는 게 잘 되진 않는다. 마음이 평화롭지 않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하긴, 사고가 났는데 바로 마음이 평화로운 것도 이상할듯하다. 아무튼.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돌아왔다.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그만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면서 찜찜함을 해소하는 한 문장을 만났다.

그때 읽고 있던 <살아 있는 기도>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책에서는 여러 기도 형태와 방법을 소개한다. 그중 예수 기도를 소개하는 데, 이렇게 설명한다. 예수 기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기도이다. 나도 전에 이렇게 기도한 적이 있었다. 내가 말하고자 한 문장은, 뒤에 소개됐다. 시메온 성인이 말한, 이 기도가 우리에게 미치는 효과다.

“다음에 무엇이 올지 걱정하지 마라. 때가 되면 그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

접촉 사고에 대한, 명확한 뜻을 아직 찾지 못한 이유를 알았다. 아! 알고 있었지만 잠시 잊었다가 다시 깨달았다.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내가 알게 될 때가 아니라서 명확하게 느껴지지 않은 거다. 그때는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알 수 있으니, 시간과 믿음을 갖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다. 선하신 뜻을 믿으며 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542.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