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대로 먼저 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행동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그리고 행동 하나에 고마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별거 아닌 거에 서운함을 느끼기도 한다. 나이가 많건 적건 나를 챙겨준다는 느낌이 들면 참 고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느낌이 들 때는, 서운한 마음이 올라온다. 참 희한한 건, 챙겨준다는 느낌을 계속 받다가 한두 번 서운한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그 느낌이 더 강하다. 고마움보다는 서운함이 더 크게 자리한다는 말이다. 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과 마음이 전과 달라진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살짝 움찔하게 된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마음이 간사할 수 있지?’ 내가 생각해도, 내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챙김을 받는 건 좋다.
하지만 타인을 챙기는 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습관적으로 익숙한 사람에게는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올리는 것처럼 별거 아닐 수 있지만,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상을 따로 차려야 하는 것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그만큼 다른 사람을 챙겨보지 않았고 익숙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니, 자랑은 아니지만 말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는 말처럼, 챙기는 것도 해본 사람이 더 잘하는 건 사실이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타인을 챙기는 사람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마치, 타인과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 듯 보인다. 자기를 챙기듯 다른 사람을 챙긴다.
챙긴다고 했는데, 아쉬움이 남을 때도 있다.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타이밍을 놓칠 때가 그렇고, 한다고 했는데 타인이 만족하지 않을 때가 그렇다. 하나면 될 줄 알았는데, 두 개를 원하고 있을 때가 그렇다. ‘그만하면 됐지 뭘 또….’하며 아쉬운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아! 맞네. 더 챙겨야 했네!’라며 깨달을 때도 있다. 문제는 그런 깨달음이, 몸으로 전달이 잘 안된다는 거다. 머리로는 아는데 몸이 재빠르게 반응하지 않는다. 라디오에 나오는 광고 중에 “몸이 기억하면 무서운 건데”라는 말처럼, 몸이 제발 기억 좀 했으면 하고 바라본다.
‘자기희생은 또 다른 역사를 만든다.’
요즘 드는, 또 다른 생각이다. 챙김을 좀 더 묵직하게 표현하면, ‘자기희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올 초에 본 영화, <영웅>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냥 눈 딱 감고 자기와 식구들만 챙기면, 알콩달콩 살다 갈 수 있는데 그러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과감하게 옮길 수 있었는지 존경스럽다. 목숨을 걸고 나라 혹은 신앙을 지키시는 분들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저기에 있었다면, 과연 저분들처럼 할 수 있었을까?’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아니, ‘나는 그렇게 못할 것 같아.’라고, 기어들어 가는 마음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조금만 춥거나 아파도 참기 어려워하는데, 그보다 몇백 배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참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순 없는 노릇이다. 군대에서처럼, 상황이 닥치면 또, 이겨낼 힘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아무튼. 정말 존경스럽다. 자기 목숨을 바쳐서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자 했던 그분들의 용기와 행동을 존경한다. 지금은 그렇게까지 할 상황은 아니지만,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희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챙김의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
멍하니 해주기를 바라고만 있지 말고, 내가 챙겨주기 바라는 그대로, 먼저 챙기기 위한 노력을 해야겠다. 가끔은 챙겨야지 하면서도 주춤주춤하다 놓쳤을 때도 있었다. 나중에 아쉬움과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지난 일이라 어찌할 수가 없었다. 시간에 제한 없이 챙겨줄 수 있는 게 있지만, 때로는 시기가 중요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주춤하는 마음이 들 때, 일단 행동하는 습관. 올해 다짐하는 또 하나의 숙제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