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가 전제되어야 할,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할 때 이룰 수 있는 상태
<평화와 화해>
성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단체 중 하나인, ‘민족화해분과’에서 나눔을 시작한 책 제목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에서 편찬한 책인데, 판매되는 책은 아니고, 각 본당의 민족화해분과에 배포된 책이다. 민족화해분과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활동하는 단체다. 지난 10월에는, 철원에 있는 민통선을 다녀오기도 했고, 올해는 ‘DMZ 평화의 길 순례’를 계획하고 있다.
2023년인 올해가 휴전한 지 70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그래서 휴전이 아닌, 종전 선언을 위한 캠페인에도 동참할 계획이다. 이 캠페인은 종교계는 물론 여러 시민단체가 힘을 모아 진행할 예정인데, 이미 몇 년 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올해는 70주년이니만큼 더 대대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곳곳에서 이 캠페인을 볼 것이고, 서명에 동참할 것을 요청받을 거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자가 배포된 이유도 그렇다고 생각된다.
나눔을 하면서 평화와 화해의 의미를 명확하게 알고, 우리가 어떤 고민을 해야 할지 생각하라는 의미다. 거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생활에서는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하라는 의미다. 그렇게 받아들여진다. 이제 첫발을 내디뎠는데, 그 시작은 평화의 정의를 살펴보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평화라는 단어는, 얼핏 잘 알 것 같지만, 막상 생각하고 표현하려면 그리 쉽지만은 않다. 지금까지 평화에 관해 쓴 글이 몇 편 있는데, 거기에 평화의 의미에 관해 잘 풀어주신 분들의 설명을 담았다. 가장 기억나는 의미는, 한자로 풀이한 의미다. 평화(平和)에서 ‘화’자를 보면, ‘입구’ 자에 ‘벼 화’자로 되어있다. 벼, 그러니까 밥이 입에 골고루(平) 들어가는 상태를 평화로 정의했다. 많이 공감됐다.
성경에서 평화를 표현하는 말은 다양하게 있다.
많이 알고 있는 ‘샬롬’이라는 표현도 있고, ‘에이레네’, ‘팍스’라는 표현도 있다. ‘샬롬’은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충만히 갖춰진 상태라고 풀이한다. 하느님께서 당신이 기뻐하는 이들에게 주시는 구원의 선물이라고 한다. 다른 두 표현은, 전쟁이 한창이던 시대에 나온 표현이라 그런지, 전쟁이 없는 상태 혹은 당사자 간에 맺는 협정의 확실성을 나타낸다고 한다. 결국, 표현은 다양하지만, 평온하고 화목한 상태가 곧 평화라는 말이다.
평화로 가는 길은 어떨까?
나눔을 하면서 책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을 했다. 평화로 가는 길에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이 ‘화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표현한 평화도, 결국 화해가 뒷받침돼야 그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따라서 평화는 문법상으로는 명사지만, 동사라고 여겨진다. 가만히 있다고 평화가 그냥 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평화의 상태는 평온하지만, 그 평화에 이르는 길은 매우 험난하다.
일상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공동체는 조용할 날이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고 서로 부대낌을 피하면 어떨까? 고요한 상태가 되기는 하겠지만, 그 상태를 평화롭다고 표현하기는 어렵다. 서로가 부대끼지만, 그 안에서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가운데, 합의를 찾아가는 과정이 진정 평화에 이르는 길이라 볼 수 있다. 누군가는 갈등이라 표현하겠지만, 그 과정이 서로를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라, 합의하는 과정이라면 갈등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평화에 이르는 길에는, 그 몫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모두가 그렇게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으니 내가 그 몫을 하기로 마음먹어야 한다. 드러나게 그 몫을 해야 하는 사람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면, 거창하게 생각할 거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지만 하나 덜먹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치우기 싫어하는 쓰레기를 치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내가 원하는 것 하나를 포기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것 하나를 하는 것. 그것을 배려의 마음으로 하는 것. 이것이 평화에 이르는 길에 그 몫을 하는 사람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