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살도록 노력하는 마음과 행동
매일 기도 중에, 지향을 두는 몇 가지가 있다.
성직자와 수도자(예비 성직자와 수도자 포함), 세상을 떠난 영혼들, 가족을 비롯한 주변에 기억하는 사람들, 내가 속해있는 모든 공동체를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생각과 말과 행위와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의탁(依託)하는 기도와 함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악에서 구해달라는 기도를 한다. 지향을 기억하는 데만도 5분 이상이 소요된다. 그중에서 세상을 떠난 영혼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포함해서, 내가 아는 가족분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가족은 아니지만, 마음에 남아 있는 분들을 기억한다. 돌아가신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순교자의 영혼을 기억하고,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도 기억한다. 그리고 불쌍하고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을 기억하는데, 특히 준비하지 못하고 떠난 영혼들을 기억한다.
오래전이지만, 라디오에서 이 표현을 들은 다음부터였다.
‘준비하지 못하고 떠난 영혼’이라는 표현이 귓가에 맴돌고 마음에 계속 머물렀다. 시간이 지나도, 쉽게 떠나지 않았다. 준비하지 못하고 떠났다는 말은, 나이가 들거나 병이 들어 이제 때가 되었다고 느끼기 전에, 예상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들과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준비하지 못하고 떠난 영혼을 나한테 대입해봤다. 그리고 내 가족이나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들로 대입해봤다. 그랬더니 마음이 먹먹하고, 순간 힘든 느낌이 강하게 밀려들었다. 생각만으로도 이런데, 실제로 경험했던 그리고 경험하고 있는 분들의 마음은 어떨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아쉬움 때문일 거다.
먹먹하고 힘든 느낌이 강하게 드는 이유는 바로, 아쉬움 때문일 거라고 여겨진다. 더 사랑하지 못한 아쉬움, 더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 더 기억하지 못한 아쉬움 등등 때문일 거다. 고마운 마음이나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아쉬움이 더해지면, 그 느낌은 몇 배나 더 강하게 밀려올 테다. 그래서 미루지 말라고 한다.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미루지 말라고 조언한다. 누가? 세상 떠날 날을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분들이 말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시간은 더 소중하고 아쉽게 느껴진다.
내 인생의 시간을 소중히 사용해야 하는 이유다.
소중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말은, 감싸두고 꼭꼭 숨겨둬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시간은 특히 더 그렇다. 필요에 맞게 적절하게 잘 사용하는 것이 소중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내 삶에 주어진 시간도, 언젠가는 떠나는 사람들처럼 항상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은 객관적인 수치지만, 지극히 주관적이다. 지난 해, 가족과 함께 본 연극 <시간을 파는 상점>에서도 그랬다. 시간은 매우 짧기도 길기도 하고, 잘게 쪼갤 수도 길게 늘일 수도 있고, 나눠서 쓸 수도 합쳐서 쓸 수도 있다고 했다. 상황에 따라 시간의 느낌과 그 사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라는 말이 있다.
이제 끝이니 극단적으로 살라는 말이 아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될 때 이렇게 생각해 보라는 말이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내적 갈등을 일으킬 때도 있다.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도무지 모르겠을 때, 이렇게 질문해 보라는 말이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후회나 아쉬움이 없는 삶을 살기는 불가능하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만족보다는 아쉬움을 더 먼저, 그리고 많이 느끼기 때문이다. 여행을 매우 많이 간 사람이, 더 다니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왜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을 다했어도,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게 부모라고 말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나는 아직 부모가 되기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어떻게 하든, 나중에 후회나 아쉬움은 남는다. 그러니 지금 현재, 후회나 아쉬움을 달고 다니지 않는 선택을 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