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세상에 파견되어 마땅히 행해야 할 나의 역할
나는 어릴 때, 야구선수를 꿈꿨다.
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동네에서 형들하고 야구를 자주 했었다. 넓은 공터가 많아서 어디서나 할 수 있었다. 네 명만 되더라도 둘씩 편을 먹고, 벽을 포수 삼아 그렇게 야구를 했었다. 벽에는 연탄재로 네모 칸을 그려 스트라이크 존을 만들었고, 바닥에는 홈과 타석 라인을 그렸었다. 인원수에 따라 3개의 베이스가 아닌 2개의 베이스로 변형하기도 하고, 규칙도 조금씩 변형해서 나름 재미있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축구 못지않게, 야구도 많이 했었다.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 2학년 때 전학했다.
운명이었을까? 전학한 학교에 야구부가 있었다. 전학 신고를 하기 위해, 할아버지, 아빠와 함께 학교를 찾았다. 운동장을 걸어가는데 야구부가 연습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만 봐도 설렜다. 나도 저기에 껴서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야구부는 처음부터 들어갈 수도 있고, 반 대항 야구 대회를 통해 선발되기도 했다. 야구부원을 선발하고 육성하기 위해, 반 대항 야구 대회를 열었던 거다. 4학년 때부터 진행되었는데, 나는 6학년 때까지 모두 선발되었다.
선발되면 1주일간 함께, 훈련받는다.
체험하라는 의미였다. 코치님과 면담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함께 훈련받으면, 야구부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나도 그랬다. 6학년 때 그랬는데, 부모님을 졸랐다. 아침에 편지를 써놓고 아침 일찍 학교에 간 적도 있었다. 나의 간절함을 전달하는 방법이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야구부에 들어가지 못했다. 설득당했다고 하는 게 맞겠다. 같은 동네에 야구부 형이 있었는데, 그 엄마가 우리 엄마를 그렇게 말렸다고 한다. 결정적으로는, 다니고 있던 주산 학원 원장님께 불려 가(?) 상담받았는데,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하지만 그날로 야구를 깨끗이 접은 건 기억난다. 그래서 야구를 볼 때면, 가끔 생각한다. ‘내가 만약 야구를 했다면 내 인생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
기억나는 게 또 하나 있다.
훈련을 같이 받던, 야구부 친구가 했던 말이다. 타석에 들어서면 감독님이나 코치님이 사인을 주는 데, 그 사인에 따라 타격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안 그러면 엄청나게 혼나는데, 그냥 혼나는 정도가 아니라, 소위 ‘빠타’를 엄청나게 맞는다고 했다. 한 번은 번트를 대라는 사인이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타석에 있던 선수는, 풀 스윙했다고 한다. 다행히 잘 맞아서 홈런이 됐다고는 하는데, 칭찬은 고사하고 엄청나게 혼났다고 한다. 사인대로 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결과적으로는 아무리 좋아도, 사인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팀 작전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란다. 홈런은 항상 나오는 게 아니니 말이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홈런을 친 선수를 칭찬해 줘도 모자랄 판에 혼을 내다니, 홈런 친 선수는 매우 억했을 것으로 생각됐다. 홈런을 치고 혼난 선수는 이 선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공동체에서 팀워크를 맞추는 일이 많아지면서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더라도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지 않으면 그리고 약속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두 번은 개인의 역량으로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계속해서 좋은 결과를 맺기 위해서는, 각자의 역할을 충실하고 서로 약속된 내용을 잘 지켜야 한다. 약속된 내용에서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판단이 들면, 미리 설명하고 동의를 구한 다음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팀워크가 깨지지 않는다. 팀워크가 깨지는 많은 이유는, 서로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앞에서 한 말과 실제 진행되는 내용이 다르면, 마음이 상하고 동기부여가 되질 않는다. 서로가 머릿속으로 그린 그림이 그려지질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까?
우리는 공동체에 속해서 살아간다.
가정과 직장 그리고 다양한 활동을 하기 위한 공동체에 속해서 살아간다. 그 공동체는 모두가 함께 잘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 유형무형의 약속이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뜻일 수도 있다. 서로가 그 뜻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 서로 간에 원활한 소통을 통해, 그 뜻을 파악하고 실행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열심히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잘하는 데까지 이를 수 있다. 그래서 진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내가 이루어야 할 뜻은 무엇인가?”